블로그2025년 11월 22일

미루고 있는 결정에 도움을 드려 볼게요.

좋은 현재 vs 나쁜 변화

이 글은 2025년 11월 22일에 르코&렉스 레터로 보낸 글입니다. 글 속 신청 안내와 일정은 보낸 날 기준입니다.

토요일이니까, 말랑한 레터를 보냅니다.

창업 5년차쯤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실은 압구정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디자인 업을 하는 회사라면 모름지기 명함에 압구정이나 논현동 주소가 박혀있어야 좀 쳐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참 따스한 오피스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겉멋만 가득찬 오피스로 보입니다.

돈 아낀다고 점심에는 7-8천 원 순두부 찌개를 먹고 산책하다가 고디바에 이끌려 들어가서는 6,500원짜리 초코 아이스크림을 사먹곤 했습니다. 벤츠는 강남 쏘나타라고 불렸고, 도산공원 인근의 아파트는 호화로웠으며, 가로수길의 가게들은 대한민국 트렌드의 최전선이었습니다. 당시 미술관, 박물관과 일을 했기 때문에 매일 한남동 리움, 이촌동 국중박, 소제동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관람객 하나 없는 뮤지엄에 들어가 예술 작품을 가장 먼저 보는 호사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런 삶이 계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주변의 물질들에 눈이 멀어, 어느새 그것이 내 삶과 미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당시 매일 퇴근 길에 하루를 복기하고 마지막에는 “오늘 행복했어?”라고 제게 묻곤 했습니다. 근데 어느 날부터 ‘아니, 별로, 그닥, 글쎄’라는 대답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창업 초창기에 가졌던 생각에 비추어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윈스턴 처칠이 한 말입니다. 인간이 공간을 만든다고 하지만 결국 그 공간과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동과 생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는 대표직을 내려놓고 서울을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그때 기준은 딱 하나였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 그렇게 5년을 제주에서 살았습니다.

혹시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나요? 오늘은 그 일에 대해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좋은 현재 vs 나쁜 변화

이직할까? 다른 데서 한번 살아볼까? 나도 창업해볼까?

내 삶의 큰 변화를 만드는 결정에서 우리가 빠지는 가장 흔한 오류는 ‘좋은 현재와 나쁜 변화’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편안함과 변화 이후의 불편함을 나란히 두고 비교하면 후자를 결정할 가능성이 사라집니다. 근데 잊을만 하면 이 질문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지금에 불만을 느낄 때입니다. 팀장이 오늘따라 더 빡치게 하고, 제주 사는 사람의 릴스에 좋아요 눌렀더니 하루종일 로컬 라이프 알고리즘에 갇히고, 야너두하며 창업 FOMO를 자극하는 따위의 일은 꽤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좋은 현재와 나쁜 변화의 프레임을 만들어 답없는 저울질을 하곤 합니다.

나약함이나 잘못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가 원래 변화의 위험을 크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최악이 먼저 떠오르고, 현재의 괜찮음을 과대평가합니다. 그거 아시나요? 요즘 2030에게 통일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굳이요? 지금 좋은데요"라고 답합니다. 이건 “좋은 분단과 나쁜 통일”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기대한다면 세 가지 방법으로 조금더 진전을 이뤄보면 어떨까요?

첫 번째 방법은 앞서 설명한 비교축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좋은 현재와 좋은 변화, 나쁜 현재와 나쁜 변화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해야 합니다. 이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비교가 조금 불공정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미루고 있는 결정 하나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종이에 아래와 같이 표를 그려서 채워보세요.

구분

현재

변화

좋음

안정적인 연봉, 익숙한 업무, 쌓인 네트워크

30% 연봉 인상, 새로운 역량 개발, 더 큰 무대

나쁨

3년째 같은 일, 성장 정체, 권태

적응 실패, 3개월 만에 나와야 할 수도

이직을 예시로 채워봤습니다. 지금의 좋은 점만 보고 변화의 나쁜 점만 보는 게 아니라, 양쪽의 최선과 최악을 눈으로 볼수 있어 결정이 수월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단일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 제가 제주를 선택할 때처럼 기준을 하나만 갖는 것입니다. 기준이 하나가 되면 다른 모든 변수는 자연스럽게 선택이 아닌 ‘적응의 문제’가 되고, 고민은 단순해집니다.

세 번째 방법은 삶의 기준을 쌓는 것입니다.

이주나 이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대부분 가격, 평수, 교통, 생활 인프라와의 거리, 집값 상승율처럼 숫자로 환산 가능한 기준으로만 비교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준들은 결국 ‘대한민국 평균적인 삶’으로 수렴하게 합니다. 숫자는 개인의 가치관을 담지 못하고, 시장의 평균값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 집을 구해본 분들은 이런 경험 있으실 거예요. “마당도 크고 집도 깔끔하니 좋은데 왜 이렇게 싸지?” 하고 보면 근처에 축사가 있고 병원이 없습니다. “여긴 집이 낡았는데 왜 이렇게 비싸?”하면 거실창으로 바다가 보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 욕망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기준이 돈과 숫자로만 구성되면 ‘나’는 사라지고 모두의 평균적 삶만 남습니다.

저는 “어디에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삶의 기준을 하나씩 적어두곤 합니다. 살다보면 원하는 바가 명확해지고 새로운 기준이 추가되곤 하죠. 아래는 제가 적어둔 리스트입니다. 그냥 말하듯 적어 뒀습니다. 참고만 해보셔요.

나는 어디에 살 것인가?

  1. AI, 전쟁, 기후변화, 국제 정치등 거시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영역에서의 불확실성이 지속 증가하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확보해야해

  2. 먹거리의 비용이 높아지고 안전성은 낮아지기 때문에 식량 자급율을 높여서 생존 인프라를 만들어야해. 그리고 병원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안전한 먹거리는 필요해

  3. 예측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자산인 부동산을 현금으로 환급할수 있어야 해. 투자비용의 70%를 환급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싶어

  4. 무엇을 보는가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결정해. 자연을 보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5. 불안한 감정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금부터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며 살고 싶어.

  6. 내 말, 행동, 마음가짐이 내 보기에 좋고 마음에 들어야 해. 그래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할수 있어.

  7. 마트에 파는 콜라보다 비행기에서 파는 콜라가 되어야해. 같은 역량으로 최대 가치가 생기는 환경에서 일해야 해

  8. 집안에 머물 때, 집이 작아질수록 자연과 가까워져. 커지면 채우려고 하는 인간의 습성도 있지. 그게 다 소비로 이어지고 인생의 복잡성이 높아지는 원인이야. 15~20평이 가장 적절해.

  9. “AI 데이터 센터/에너지 인프라”와 “북극항로”, 이 두가지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서 수도권 중심 1극 체제를 깨는 방향으로 돈이 흘러갈테니 이것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내 인생의 로또’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기준을 쌓아두면 좋은 현재와 나쁜 변화를 비교하는 오류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기준이 방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변화 앞에서도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주말입니다.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결정을 꺼내보세요. 그리고 기준을 적어보세요. 숫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들. 몇 가지라도 적다 보면, 지금 미루고 있는 결정을 다시 만났을 때, 약간의 진전을 이룰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 레터는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9,900원이라는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그 이상 가치의 시야를 얻었습니다.정말 통찰력과 인사이트가 넘칩니다. 겉보기만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시선들이 담겨 있어요.특히 인상적인 건,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고 있던 생각들을 정확한 언어로 눈에 보이게 정리해 주신다는 점입니다.글 하나하나가 가볍게 쓰인 게 아니라는 게 문장 사이사이에서 느껴집니다. 마치 질문이 질문을 낳는 구조처럼, 끊임없이 파고들며 본질에 닿으려는 사고 과정이 글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그래서 고민 없이 바로 구매했고, 읽는 내내 “역시는 역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책을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루틴이 돈이다] 독자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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