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에는 [창업가 인문학]을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뜻하지 않게, 창업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았습니다.
Phase 1. 생계: 가족같은 정을 기반으로 공동체 번영과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Phase 2. 성공: 비전을 기치로 동료를 모으고 성공을 꿈꿨습니다.
Phase 3. 생존: 나만의 세계관을 찾아 생존의 연대를 구축합니다.
시대별로 좇은 북극성을 이해하면,
지금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열광하는지,
창업가의 지향(북극성)이 선명해질 것입니다.
“내가 창업한다면, 무얼 팔아야 할까?”
Phase 1. 생계를 돕는 가족, '정(情)'의 시대
1970~1998
한 솥밥 먹는 사업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섬유업이 부흥하던 시기, 아버지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서 유통하는 사업을 하셨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들은 주로 동네에 거주하는 재봉 기술자거나 부모님의 오랜 친구들이었습니다. 재봉틀을 돌리는 작업 특성상 대부분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이었죠.

당시 아버지의 공장에 태극기는 없었지만 라디오에 애국가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던 시기였습니다. 공장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사진: 엄상빈 작가]
‘가족’과 다름 없었습니다. 점심을 우리 집 밥상에서 다 함께 먹기도 했고, 여름이면 어머니께서 만드신 화채나 미숫가루를 제가 공장으로 배달하곤 했습니다. 떠올려 보니, 그분들은 모두 한 동네 이웃이었습니다. 자녀들을 돌봐야 했기에 집과 가까운 일터를 선택해야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도 이웃사촌을 고용하면 레퍼런스 체크나 압박 면접 같은 검증 절차 없이도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죠. 매일 골목에서 마주치고, 자녀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며, 밥상에 올라가는 수저 개수까지 훤히 아는 처지에 서로의 뒤통수를 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렇게 이웃사촌이 일터에 모여 한 솥밥을 먹으며 가족처럼 일했습니다.
신뢰 비용이 필요 없던 성실함의 시대
70~80년대 한국의 중소 제조업은 이처럼 혈연과 지연 기반의 고용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족 같은 회사’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이 말은 끈끈하고 정겨운 조직문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ROI높은 인재영입 전략입니다.
‘공동체적 자본주의’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던 이 시기에는 고도의 혁신보다 ‘성실함’이 가장 큰 자본이었습니다.

대표는 포르셰를 타고 직원은 지하철을 타는 요즘의 풍경과 달리 당시 아버지와 직원들의 경제적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적었을 것입니다. “같이 잘 살자”는 말은 리더의 공수표가 아니라, 서로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며 품게 된 진심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 한편에 숨겨둔 꿈도 비슷했습니다. 생계와 자녀 교육이라는 양대 과제 속에서, 자녀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고 아들딸 덕에 호강해 보는 것이 그 시대 부모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개인적 영달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수준과 가치관의 동질성은 조직 내 갈등을 최소화하고 결속력을 높이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요즘 스타트업의 간식바는 그시절 새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더우면 수박 썰어서 내오고, 추우면 고구마, 감자 쪄서 다같이 먹으니 조직의 핵심가치는 ‘정’ 한글자로 통합니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이 견고해 보이던 가족 같은 회사 공동체는 순식간에 해체되었습니다. 끈끈했던 이웃사촌의 연대보다는 생존과 효율이 우선시되는 시대로 급격히 전환된 것입니다.
부모 세대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완수한 자녀 세대는 이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도로를 타고 각자의 '비전'을 쫓아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 나 창업 할게요’라며 장문의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Phase 2. 성공을 돕는 비전, ‘꿈’의 시대
1999~2020
너, 내 동료가 돼라
IMF의 여파 속에 있던 대한민국에 인터넷이라는 초고속 도로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동네에서 거래되던 물건들은 압도적인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 갔습니다. 삐삐에서 시티폰으로, 어느새 모두의 손에 핸드폰이 들렸고, 2008년 출시된 아이폰은 세상의 모든 서비스를 빨아들였습니다. 모바일 시대는 전 세계 모든 서비스가 24시간 내내 고객의 손안에 있다는 것, 경쟁 상대는 더 이상 동네 가게나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2009년 학교를 자퇴하고 동기들과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세대에서 통용되던 '동업하면 망한다'는 말이 여전히 정설처럼 떠돌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우려가 무색하게,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의 창업은 동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경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개발, 기획, 디자인을 담당할 3명의 코파운더 세트가 창업의 기본 조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제조를 통해 더 잘 만들고 싸게 파는 게임을 하셨다면, 저는 세상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정의하고 서비스를 만드는 게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작은 사무실에서 최저 생활비를, 그마저도 불규칙하게 받으며 수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뭘 하소연 하거나 자랑할 데도 별로 없어서 노트에 끄적끄적 기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꿈”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사업을 했습니다. 지금 다시 말해보라고 한다면.. 좀 철이 들었기 때문에 “돈을 잃지 않는, 꿈을 꿉니다.”
그때 창업씬에서 농반진반 떠돌던 말이 있습니다. “창업을 언제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결혼 전에 해라. 결혼했으면 애 낳기 전에 해라. 아이가 있으면 다 큰 뒤에 해라.”는 조언을 듣곤 했습니다. 아버지 세대와 달리 창업의 시기가 꽤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죠. 잡스의 영향으로 자퇴후 차고에서 창업하는 게 쿨한 이미지였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창업하는 불효자들이 즐비하던 낭만의 시대, 저는 한 술 더 떠서 대학 자퇴하고 창업을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보다 자유로웠습니다. 그 가벼운 책임감이 준 여유 덕분에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치열하게 생각해 볼수 있었습니다. 창업은 해결하고 싶은 문제, 즉 “꿈”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Co-founder는 그 무모한 비전에 동참한 이들이었습니다. 새로운 팀원을 들일 때도 비전을 보여주며 “로켓에 올라타”라는 말이 유행했죠. 마치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처럼 "너 내 동료가 돼라!"라고 외치는 느낌으로요. 밤낮으로 합숙하고 고난의 행군을 하듯, 전우애가 절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창업 초기 나(르코)와 코-파운더들. 첫 해외 프로젝트를 위해 다 같이 이탈리아 로마에 체류했을 때인데요. 인생 술술 풀리던 때라 어깨가 들썩이던 출근길 모습.
문제 해결과 미션 중심의 연대
비즈니스의 핵심 가치가 '생존'에서 '혁신'으로, '정'에서 '비전'으로 이동한 시기입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정점에서, 비즈니스는 국경 없는 확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산업적으로 보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아버지 세대가 물건의 '품질'을 팔았다면, 이 시기의 스타트업은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팔았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성실함보다 창의적 기획력이었으며, 이를 위해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과거의 '가족 경영'이 혈연과 지연의 ‘정’에 기반했다면, 스타트업은 '비전'이라는 지향점에 기반을 두고 결속했습니다. 대표와 직원의 관계는 고용 관계를 넘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료'로 바뀌었습니다. 미션 중심의 가치 공동체였죠.
하지만 이 '비전 중심의 연대'는 비전이 흐려지거나 보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급격히 약화되는 취약성도 있죠. 그럼에도 초연결 사회의 수혜로 상방이 열려 있던 이 시기는 창업가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대한 낙관과 낭만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낭만이 잦아들 무렵, 우리는 코로나와 AI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또 다른 생존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세 번째 페이즈를 맞이하게 됩니다.
Phase 3. 생존을 돕는 세계, ‘관(觀)’의 시대
2021~

무너진 질서와 각자도생
코로나19, 저성장, 그리고 AI는 전 세계를 일시에 하나의 거대한 과제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250년 간 지탱해 온 산업화 시대 질서로는 해결되지 않는 전례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죠. 이제 국가는 국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길을 찾습니다. 패권국인 미국 1극 체제와 다자간 협력주의라는 큰 틀이 사라진 자리에 보호주의와 각자도생의 논리가 들어섰습니다.
아버지 세대는 “우리 잘 살아보자”의 정신으로 공동체의 번영과 가족의 생계를 지향했다면 지금 세대의 생존은 이 질문으로 향합니다.
“‘나’로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주어가 ‘나’이며, 잘 사는 게 아니라 뜻하지 않게 주어진 각자도생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국가와 가족이라는 기본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옅어진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나’들이 모인 작은 세계를 갈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슷한 취향찾기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세계관(Worldview)’의 연대입니다.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K-pop이 주류가 된 배경 역시 국가를 초월해 인류 보편의 정서인 ‘극복 서사’라는 세계관이 지금의 시대정서를 관통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즈니스는 국가나 회사라는 기성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BTS와 같은 아이돌에게, 누군가는 조란 맘다니,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에게, 누군가는 일론 머스크, 피터 틸과 같은 글로벌 기업 CEO의 세계관에 동참합니다.

팔란티어는 이름부터가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구슬을 따왔습니다. 이들의 세계관은 "데이터라는 현대의 '마법 구슬'을 통해, 보이지 않는 위협을 먼저 찾아내고 자유 진영의 승리를 돕는다"는 일종의 '디지털 파수꾼'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브짱]
반대로 말하면, 이미 형성된 세계관에 동참하는 대신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들이 아이돌이되고, 기업의 CEO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됩니다. 예능,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는 기존 질서에 때타지 않은 세계관을 찾아내서 대중에게 선보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미디어를 경유하지 않고는 발견될 수 없죠.
비즈니스 = 세계관으로 초대
거대 질서(국가·기업)가 붕괴하고, ‘개인의 세계관’이 비즈니스의 핵심 자본이 된 시대입니다.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기존 세계 질서의 해체입니다.
미국 주도의 질서가 사라진 'G-Zero' 시대와 공급망이 파편화되는 '디커플링' 현상은 개인들에게 더 이상 시스템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각인시켰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상방을 뚫는 '성공'보다 하방을 받치는 '생존적 연대'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시스템의 효율보다 개인의 진정성(JJS)이 더 가치있습니다.
조직은 시스템화와 효율화를 추구하느라 정서와 세계관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개인의 세계관은 그 사람이 살아낸 흔적 그 자체입니다. 매끄럽게 정제된 기업의 언어는 의심을 사지만, 울퉁불퉁하고 솔직한 개인의 언어는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가와 별개로 그 자체로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셋째, 판매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지금의 비즈니스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품이 아니라 콘텐츠가 중요합니다.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콘텐츠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냥 상품입니다. 서른 살이면 30년 간 만들어진 세계관 상품입니다. 내러티브를 살펴보고 고객은 거기에 동참할지 말지 판단하며, 구매는 입장권을 끊는 티켓팅에 불과합니다.
제품이 아니라 '살아낸 흔적'을 삽니다.
시대정서를 타고 생계, 성공, 생존의 북극성을 좇으며 창업의 의미는 진화해 왔습니다.
Phase 1 생계-정: '가족' 공동체에서 정을 나누며 기반을 닦았습니다.
Phase 2 성공-꿈: '비전'을 기치로 동료를 모으고 성공을 꿈꿨습니다.
Phase 3 생존-관: '세계관'을 찾아 생존의 연대를 구축합니다.
왜 지금 평범한 개인들이 유퀴즈에 나오고, 사람들이 기업의 매끈한 광고보다 개인의 울퉁불퉁한 이야기에 열광할까요?
기업의 브랜드는 자본으로 쾌속 가공된 세계관이지만, 개인의 세계관은 시간의 세례를 받아 '살아낸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속일 수도, 단기간에 만들 수도 없는 이 유일무이한 흔적만이 오늘날 가장 강력한 자산입니다. 사람들이 누르는 '좋아요'와 '구독', 그리고 '구매'는 그 사람의 세계관에 공명하며, "나도 이 세계관 안에서 함께 생존하겠다"는 적극적인 동참의 표시입니다.
창업은 생존의 시대에 '나'로 살아내기 위한 세계관을 만들고 동참시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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