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콘텐츠를 얼마나 보나요?
얼마 전 SNS에서 신박한 남편 자랑을 봤습니다. 조회수도 많았고 댓글에서도 사람들이 남편 대단하다며 엄지척을 하더군요. 무슨 자랑이냐면, 화장실 갈 때 핸드폰 없이 간다고.
하루가 빈틈없이 콘텐츠로 채워지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매일 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삽니다. 단순 재미를 위해 소비하는 콘텐츠는 제외하고, 지식정보를 섭취가 합리적인/생산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중 하나가, “인풋은 주로 어디서 하시나요? 콘텐츠 추천해주세요.”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기 위해 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콘텐츠에도 식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콘텐츠 식단에는 생각보다 큰 구멍이 있습니다.
콘텐츠를 맛으로만 고르면 생기는 일
콘텐츠를 겉으로만 쉽게 분류하면 두 가지입니다. 재밌거나 유익하거나. 이건 반응을 선택기준으로 두는 것입니다. “재밌겠다!” 또는 “오 이건 뭔가 인사이트가 있는데? 꿀팁 감사합니다.”와 같은 식이죠. 이 즉각적인 반응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마치 음식을 단짠으로 구분하고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음식이 모두 단짠으로 가고 있죠.
어떤 콘텐츠는 사실을 알려주고, 어떤 콘텐츠는 인식을 크게 전환시켜주기도 합니다. 어떤 콘텐츠는 뼈를 때려서 행동의 변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콘텐츠를 세 가지 축으로 나눠 봅니다.
깊이
매체
대상
이 세 가지 축을 설정하면 3차원의 콘텐츠 공간이 되고 좌표를 찍을 수 있게됩니다. 이걸 콘텐츠 좌표계라고 해볼게요. 거창한 이론이라기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너무 많이 먹고 있고 무엇을 거의 먹지 않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지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첫 번째 축: 깊이
단계 | 이름 | 답하는 질문 | 대표 콘텐츠 |
|---|---|---|---|
0 | 사실 | 무슨 일이 일어났나? | 속보, 원문, 공시, 데이터 |
1 | 이해 | 그게 뭔가? | 요약 영상, 정리 글, 카드뉴스 |
2 | 해석 | 왜 중요하고 무엇과 연결되나? | 분석 글, 뉴스레터, 칼럼 |
3 | 비판 | 그 해석의 전제는 맞나? | 반론, 리뷰, 전문 커뮤니티 논쟁 |
4 | 전망 | 다음에는 무엇이 달라지나? | 시나리오, 리포트, 긴 대담 |
5 | 처방 |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 플레이북, 체크리스트, 실행 가이드 |
가장 중요한 축입니다.
모든 지식정보는 이 6단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체감상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는 0과 1이 전체의 95% 이상입니다. SNS와 유튜브 때문이죠. 이 깊이는 대체로 조회수와 반비례합니다. 해석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비판은 불편하고, 전망은 틀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논리근거가 강화될수록 콘텐츠는 길어지고 그럴수록 인지비용이 높아집니다. 게다가 비판까지 가면 스스로 사고해야하기 때문에 알고리즘에서 쉽게 탈락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2,3,4를 몽땅 건너띄고 0과 5만 남은 콘텐츠를 선호합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주식이죠.
0단계 사실: 코스피가 오른다.
5단계 처방: 뭐 사면 돼요?
스레드에서 가장 잘 터지는 콘텐츠 포맷이 “시의성 높은 꿀팁”입니다. 지금 스레드에 들어가보세요. 6일밖에 안풀리다보니 “Fable5 뽕 뽑는 법”이 조회수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1-4를 제거할수록 내가 맞닥뜨린 문제(사실)에서 처방(정답)을 외부에서 조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알려주는 처방은 대체로 오답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특수한 조건 값없이 도출한 일반론이니까요.
내가 보는 콘텐츠를 단짠이 아니라 이 좌표계에 넣고 보면, 이렇게 루틴을 짜볼수 있죠.
사실과 이해 콘텐츠는 지금보다 50% 줄여야겠어.
일단 해석 콘텐츠가 양을 좀 늘리고 매일 출근길에 보자.
산책 하면서는 비판 콘텐츠를 보는 게 좋겠어.
매달 초엔 전망 콘텐츠 섭취를 루틴으로 가져 볼까?
처방 콘텐츠는 당장 실행으로 가지말고 일단 아카이브만 해놔야겠다.
어떤가요? 무슨 콘텐츠를 봐야할지 훨씬 구체적이고 액셔너블하죠.
두 번째 축: 대상
이건 백미입니다. 여기서 굳이 두번째 축을 넣은 이유는 바로, 돈 버는데 이보다 중요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응, 즉 댓글입니다.
SNS의 콘텐츠는 별 내용이 없습니다. 특히나 AI슬롭이 증가하면서 더욱 심해졌죠. 근데 그 댓글은 노다지입니다. 포스팅에 대해 사람들이 어디서 화를 내는지, 무엇을 오해하는지, 어떤 표현에 끌리는지, 어떤 이야기에 자기 시간을 쓰는지가 드러납니다. 그걸 알면?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설계할수 있게 되고 이는 곧 수익으로 연결됩니다.
반응의 종류 | 볼 수 있는 곳 | 알려주는 것 |
|---|---|---|
정서 반응 | 스레드, X, 유튜브 댓글 | 사람들이 어디서 흥분하고 거부감을 느끼는지 |
논증 반응 | 전문 커뮤니티, 긴 댓글, 리뷰 | 내 주장에 들어올 반박과 빈틈 |
지불자 반응 | 후기, 구매, 재구매, 이탈 | 실제로 돈과 행동이 움직인 이유 |
세 번째 축: 매체
같은 정보라도 어떤 매체에 담기느냐에 따라 갈 수 있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60초짜리 쇼츠에 깊은 전망이 담기기는 어렵고, 두 시간짜리 대담이 속보를 전하는 데 가장 좋은 형식도 아닙니다. 매체마다 잘 담는 정보가 따로 있습니다.
그릇 | 잘 담는 정보 | 조심할 점 |
|---|---|---|
숏폼, 짧은 피드 | 사실, 요약, 정서 반응 | 빠르지만 관점까지 가기 어렵습니다. |
커뮤니티 | 반응, 반박, 현장의 언어 | 본문보다 댓글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
블로그, 뉴스레터, 서브스택 | 해석, 비판 | 꾸준히 읽어야 관점이 쌓입니다. |
팟캐스트, 긴 대담 | 사고 과정, 전망 | 결론보다 생각의 흐름을 봐야 합니다. |
책, 보고서, 긴 에세이 | 틀의 전환 | 느리지만 오래 남습니다. |
원문, 데이터, 공시 | 사실의 바닥 | 남의 해석이 수상할 때 내려가는 곳입니다. |
이렇게 보면 절대적으로 좋은 콘텐츠란 없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나에게 비어 있는 칸을 채워주는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꾼 글이 다른 사람에게는 뻔한 글일 수 있습니다. 그건 한쪽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각자 비어 있는 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이렇게 따라해 보세요.
먼저 진단해야 합니다
식단을 바꾸려면 먼저 뭘 먹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최근에 실제로 본 콘텐츠를 펼쳐놓고 좌표를 찍어봐야 합니다. 머릿속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기록이어야 합니다.
유튜브 시청 기록, 저장한 글,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 끝까지 들은 팟캐스트, 읽다 만 뉴스레터까지 보면 내가 어떤 정보를 반복해서 먹고 있는지 보입니다.

위 그래프는 실제 통계가 아니라 진단 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니라 패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는 결핍이고, 다른 하나는 과잉입니다.
진단 | 뜻 | 흔한 예 |
|---|---|---|
결핍 | 거의 먹지 않는 칸 | 해석, 비판, 1차 소스, 반응 데이터 |
과잉 | 이미 충분한데 계속 먹는 칸 | 쉬운 요약, 숏폼 피드, 비슷한 관점의 글 |
불일치 | 목표와 식단이 어긋난 상태 |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반응 데이터를 안 보는 경우 |
문제는 숏폼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만 계속 먹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요약 콘텐츠를 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요약 이후의 해석과 비판으로 내려가지 않는 데 있습니다.
목록이 아니라 루틴입니다
무슨 콘텐츠를 볼지 정해도, 아무리 좋은 콘텐츠 목록이 있어도 내 시간에 끼워넣지 못하면 그냥 어딘가 저장해두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출근길에는 눈이 아니라 귀가 비어 있고, 점심시간에는 긴 글을 읽기 어렵고, 자기 전에는 시간이 있어도 집중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주말 오전처럼 드물게 긴 생각이 가능한 시간도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콘텐츠를 섭취할수 있는 시간과 그 시간마다 섭취할수 있는 콘텐츠 유형이 다릅니다.
하루의 콘텐츠 슬롯 | 비어 있는 감각 | 맞는 콘텐츠 |
|---|---|---|
이동, 산책, 운동 | 귀 | 팟캐스트, 긴 글 음성 변환 |
오전이나 낮의 집중 시간 | 눈과 머리 | 미드폼 글, 분석 뉴스레터 |
피곤한 밤 | 눈은 비지만 에너지는 낮음 | 새 피드 대신 모아둔 글 하나 |
주말의 긴 시간 | 눈, 귀, 생각 | 책, 보고서, 긴 에세이 |
발행 전후 | 반응을 볼 수 있는 시간 | 댓글, 후기, 커뮤니티 반박 |
목표가 있어야 구멍도 보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식단의 구멍은 목표가 있어야 보입니다. 목표가 없으면 골고루 보게 됩니다. 지적 호기심만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면 방향없는 반복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식단과, 사업 아이템을 찾는 사람에게 필요한 식단은 다릅니다. 투자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식단과, 조직 안에서 설득력을 높이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식단도 다릅니다. 내가 무엇을 더 잘하고 싶은지, 어떤 결정을 더 잘 내리고 싶은지,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지에 따라 빈 칸이 달라지죠.
목표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3년 뒤 어떤 사람이 되겠다” 같은 문장이 없어도 됩니다. 오히려 그런 목표는 너무 멀어서 오늘의 식단을 바꾸는 데 도움이 안 될 때도 많습니다.
지금은 더 작은 질문이면 충분합니다. 요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 무엇인지, 한 달 뒤 내 말과 글과 결정 중 무엇이 조금 달라지면 좋겠는지, 지금 반복해서 막히는 장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 정도의 방향만 있어도 어떤 콘텐츠가 내게 필요한지 훨씬 잘 보입니다.
인풋의 완성은 아웃풋입니다
인풋을 하는 이유는 아웃풋하려고죠. 결국 무언가가 달라져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문장과 관점이 달라져야 하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판단과 선택지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객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하고, 기획을 하는 사람이라면 설득의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인풋의 완성은 아웃풋입니다. 본 것을 내 안에 오래 쌓아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글 한 편으로 나가도 좋고, 회의에서의 한마디로 나가도 좋고, 제목 하나를 고치는 일이어도 좋습니다. 어떤 주장에 대한 반대 논리를 세 줄로 적어보는 것도 좋고, 읽은 내용을 실제 결정 하나에 반영하는 것도 좋습니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웃풋이 없으면 인풋은 소비에 가까워지고, 아웃풋이 생기면 인풋은 재료가 됩니다.
20%는 일부러 샛길로 두세요
다만 목표에 맞춰 식단을 짜다 보면 또 다른 위험이 생깁니다. 생각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알고리즘화 되어버리죠. 내가 좋아할 만한 것, 오래 볼 만한 것, 이미 관심 있는 것을 계속 줍니다. 편하지만 어느 순간 비슷한 생각 안에서만 돌게 됩니다. 목표에 너무 최적화된 콘텐츠 식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한 것만 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우연히 들어와야 할 것들이 사라집니다.
생각의 도약은 계획 밖에서 옵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책에서 글의 비유가 나오고, 관심 없던 다큐멘터리에서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내 주장과 정반대인 글을 읽다가 오히려 내 생각의 약한 부분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콘텐츠 식단에는 일부러 비워두는 칸이 필요합니다.
저는 전체 인풋의 20% 정도는 내 목표와 전혀 무관한 콘텐츠를 봅니다. 가령 오늘 새벽 산책길에 “영국이 왜 10년간 총리가 7번이나 교체됐는지”에 대해 30분간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껍데기는 영국의 사회정치 콘텐츠지만 사실을 해석하고 비판하고 전망하는 논리전개를 따라가면서 나의 로직을 점검하고, 그가 쓰는 워딩 중 쓸만한 것들을 발라내며, 영국의 문제를 만든 글로벌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크로적인 관점의 밀도가 생기고 이는 곧 마이크로한 액션의 정확도를 높이므로 내게 이득입니다.
이건 계획된 잡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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