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저는 팔 물건이 없어요.”
이 질문을 정말 자주 받습니다. 공장도 없고, 코딩도 못 하고, 기발한 발명품도 없으니 일단 잘되는 아이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고요.
오늘은 그 순서를 한번 뒤집어 보려고 합니다. 비즈니스의 시작은 물건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나’를 해체해 사람들이 돈을 내는 조각을 발견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각 하나가 어떻게 콘텐츠를 거쳐 상품과 매출로 이어지는지, 가장 모호한 키워드인 ‘취향’을 가지고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1. 아직도 비즈니스를 ‘물건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많은 사람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비즈니스를 ‘물건(Product)을 파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뭘 팔아야 하지? 나에겐 제조 공장도, 코딩 능력도, 기발한 발명품도 없는데.”
“역시 잘되는 아이템을 찾아야 하나?”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 고민은 번지수가 조금 틀렸습니다. 20세기 제조업적 사고방식에 가까우니까요. 공급 과잉의 시대에는 기능 좋은 물건이 이미 넘쳐납니다. 지금 시장에서 희소한 것은 기능보다 관점이고, 제품보다 맥락입니다.
물론 제품은 필요합니다. 다만 시작부터 제품을 정해놓고 나를 끼워 맞추면, 남들이 파는 물건의 복제품을 만들기 쉽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만들까’보다 ‘나는 어떤 문제와 키워드를 남들과 다르게 볼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2. ‘나’라는 원석을 해체(Unbundling)하여 팝니다
사업과 퍼스널 브랜딩은 본질을 파고들면 징그럽게도 비슷합니다. 결국 내가 선택한 키워드를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콘텐츠로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상세페이지도 콘텐츠고, SNS 광고도 콘텐츠고,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늘어놓는 자랑도 콘텐츠입니다.
“저는 팔 물건이 없는데요? 뭔가 팔아본 적도 없고요.”
아닙니다. 제품이 없어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무언가를 팔고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회사에 나라는 제품을 팔기 위해 자소서라는 상세페이지를 쓰고, 더 잘 팔기 위해 면접이라는 대면 세일즈도 합니다.
팔고자 하는 실체가 아직 없다면 외부의 아이템 목록부터 훑지 마세요. 먼저 내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유난히 집착하는 마이너한 취미, 남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나만 불편해하는 문제. 나를 구성하는 이런 키워드가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입니다.
지금 시대의 창업은 공장을 짓는 일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해체(Unbundling)하고, 그 조각을 시장이 원하는 언어로 다시 조립하는 일로도 시작됩니다.
3. 키워드 하나가 비즈니스가 되는 메커니즘: 마더 콘텐츠
제조력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의 비즈니스는 ‘아이템 찾기’보다 ‘키워드 장악’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뭘 팔지 모르겠다면 어떤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들지부터 정해보세요. 그리고 그 단어를 나만의 정의로 해석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정리’라는 지루한 키워드를 ‘인생을 통제하는 기술’로 재정의하여 컨설팅을 팝니다. 곤도 마리에입니다.
누군가는 ‘독서’라는 익숙한 키워드를 ‘성공을 위한 뇌 최적화’로 재정의하여 커뮤니티를 팝니다. 자청입니다.
이 과정에 필요한 것이 르코와 렉스가 말하는 마더 콘텐츠(Mother Content)입니다. 단순한 블로그 글이나 인스타그램 피드 한 편이 아닙니다. 내 사업을 규정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는 나만의 헌법이자 선언문입니다.
마더 콘텐츠가 사람을 설득하면 내 관점에 동의하는 트래픽이 모입니다. 그다음 그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면 템플릿(DIY)이 되고,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 커뮤니티(DWY)가 되고, 대신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대행 서비스(DFY)가 됩니다. 비즈니스의 제형(Format)은 달라져도 출발점은 같습니다. 내가 선택한 키워드와 그 키워드를 해석하는 관점입니다.
이걸 저희가 요즘 정리하고 있는 ‘돈 버는 방정식’에 넣으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단계 | 이 글에서 하는 일 |
|---|---|
① 추출력 | 나를 해체해 돈이 될 수 있는 키워드를 꺼냅니다 |
② 검증력 | 그 키워드에 대한 관점을 콘텐츠로 내놓고 반응을 봅니다 |
③ 상품력 | 반응이 온 관점을 템플릿·커뮤니티·서비스로 묶습니다 |
④ 도달력 | 마더 콘텐츠를 중심으로 신뢰와 트래픽을 쌓습니다 |
⑤ 판매력 | 관심을 보인 사람에게 다음 행동을 제안합니다 |
처음부터 다섯 단계를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관점이 있으니 언젠가 돈이 되겠지’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관점이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반응을 만나고, 반응이 상품과 제안으로 이어져야 한 바퀴가 완성됩니다.
이론만 들으면 조금 추상적이죠. 그래서 가장 모호하고 잡히지 않는 키워드인 ‘취향(Taste)’을 이 방정식의 첫 번째 칸에 넣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은 “취향은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대로 선언하겠습니다. 저는 청개구리니까요.
취향은 돈이 아니라 시선입니다.
이제부터 보여드릴 글은 ‘취향’이라는 키워드를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마더 콘텐츠의 예시입니다. 제품을 직접 홍보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 관점으로 ‘취향’이라는 키워드의 매력도를 끌어올려 보겠습니다.
한번 제 관점을 팔아보겠습니다.
취향에 대한 마더 콘텐츠
1. 도이치 그라모폰의 노란 딱지와 빨간 딱지의 라이카

솔직히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상상을 합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도이치 그라모폰(DG)의 노란 딱지 붙은 LP판들, 그리고 그 옆에 무심하게 놓인 빨간 딱지의 라이카 카메라. 친구들을 초대해 “아, 이건 1982년산 샤토 마고야. 탄닌이 아주 우아하게 풀렸지”라고 말하며 젠체하는 상상 말입니다.
아니시라고요? 아니시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아주 고전적인 질문이 하나 튀어나옵니다.
돈으로 산 물건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인가?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취향이 자동으로 탑재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로 부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클래식 음반 300장을 일시불로 긁고 수천만 원짜리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고 해보죠. 그렇다고 집주인의 귀가 갑자기 카라얀의 지휘봉 끝 땀방울을 느끼는 ‘황금귀’가 될까요? 셔터만 누르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같은 결정적 순간이 찍힐까요? 천만에요. 대부분의 경우 그 음반들은 비싼 벽지가 되고, 그 카메라는 무거운 목걸이가 될 뿐입니다.
경제력은 ‘접근권’을 살 수는 있어도 ‘감식안’까지 패키지로 팔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소유의 착각입니다. 우리는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결제하는 순간, 이미 일러스트 작가가 된 듯한 기분에 젖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잔뜩 사서 쌓아두는 것만으로 지식인이 된 것 같고, 일본어 교재를 사는 순간 이미 일본어를 절반쯤 마스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아이패드는 넷플릭스 머신이 되고, 일본어 교재는 책장 한편에 얌전히 존재합니다. 취향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사유하며 깎아나가는 조각품이니까요.
2. “돈이 없으면 취향도 사치다”라는 서글픈 반론

여기서 아주 현실적인 반론이 훅 들어옵니다.
“돈이 없는데 취향 타령이 웬 말이냐.”
이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찔리지 않는다면 선생님은 거짓말쟁이거나, 아주 운이 좋은 분일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험은 대체로 유료입니다. 취향 역시 의식주가 해결된 뒤에 찾아오는 ‘잉여의 산물’일 때가 많고요.
스시나 한우 오마카세에 한 번 가려 해도 며칠 치, 때로는 몇 주 치 식비가 나갑니다. 싱글몰트위스키의 피트 향을 즐기려 해도 돈이 듭니다. 매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며 내일 카드값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음식의 풍미를 즐기라”거나 “오페라의 선율을 느껴보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내 취향인지 아닌지 확인조차 못 하는 경우는 분명히 있습니다.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는데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며, 평생 소주만 마셨는데 보르도 와인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난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물건을 못 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상상력의 빈곤’을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할 수 있는지 탐색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가장 잔인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3.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진짜’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생각을 약간 비틀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플레이해야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취향을 소비 행위와 동일시합니다.
골프를 좋아한다 = 골프채를 사고 필드에 나간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요? 새벽마다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챙겨 보고 감독의 전술을 분석하며 선수들의 이적 시장 흐름까지 꿰고 있다면, 축구하러 나갈 체력과 장비가 없어도 그 사람은 축구 애호가입니다.
내 명의로 집을 지을 돈이 없어도 안도 타다오의 도면을 찾아보고,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을 공부하며 공간감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건축 문외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1차원적 취향: 돈을 내고 직접 행하는 것 — 소유와 과시
2차원적 취향: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지식을 쌓는 것 — 관조와 이해
물론 직접 해보는 경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그 세계를 사랑할 자격까지 박탈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결핍은 때때로 더 깊은 몰입을 만듭니다. 가질 수 없기에 더 간절하게 바라보고, 닿을 수 없기에 더 오래 연구하는 마음. 진정한 심미안은 풍요보다 결핍에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4. 심미안은 ‘지갑’이 아니라 ‘시선’에서 나옵니다
(두툼한 지갑이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요.)
경제적인 이유로 지금 당장 명품을 두르거나 파리로 떠나지 못한다고 기죽지 마세요. 저는 취향은 구매력보다 집중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자극 중에서 무언가를 멈춰 바라보는 힘. 남들은 “그냥 풀이네” 하고 지나갈 때 “저 잎맥의 패턴이 참 기하학적이군”이라고 생각하는 시선. 남들은 “소음이네” 할 때 그 안에서 리듬을 찾아내는 귀. 이것이 심미안 아닐까요.
경제력은 발견의 기회를 살 수 있습니다. 비행기표를 사서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확률도 높아지겠죠. 그러나 그 기회가 곧바로 깊이 있는 취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루브르에 가서 모나리자 앞에서 셀카만 찍고 나오는 부자보다, 도서관 구석에서 렘브란트 화집을 닳도록 들여다보는 가난한 학생의 눈빛이 더 깊을 수 있습니다. 돈은 우리를 백화점과 미술관으로 데려다주지만, 그 물건과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입니다.
육아 때문에, 대출금 때문에 미술관에 못 가신다고요? 아이를 재우고 넷플릭스에서 미술 다큐멘터리를 보며 전율을 느낀다면 나의 취향은 아직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실전 팁] 돈 들이지 않고 내 취향을 아카이빙하는 두 가지 방법
이 두 가지만 꾸준히 해도 1년 뒤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 너 좀 보는 눈이 달라졌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돈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시간과 노력만 조금 필요하죠.
1. ‘음악 디깅 장인’ 되기 — YouTube 활용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대로 듣지 말고 나만의 주제를 정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세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재즈’, ‘노동요로 쓸 90년대 하우스 음악’처럼요.
곡을 고르고 순서를 배치하는 과정 자체가 큐레이션 훈련입니다. 남들은 TOP 100을 들을 때 나는 나만의 DJ가 되는 것이죠.
2. 도시에서 폰트(Font) 사냥하기
길을 걸으며 간판의 글씨체를 관찰해보세요. 오래된 세탁소의 진지한 궁서체, 힙한 카페의 모던한 고딕체, 공공기관의 딱딱한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어 모아두세요.
글자의 삐침 하나, 굵기 하나에도 만든 사람의 의도와 시대의 미감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삭막한 도시의 간판들이 거대한 디자인 미술관으로 변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종종 자신의 취향이 초라하다고 느낍니다. 남들은 주말마다 호캉스를 가고, 명품을 두르고, 비싼 취미를 즐기는 사진을 올리니까요. 내 취향은 고작 방구석에서 웹소설을 읽거나 동네 산책을 하거나 편의점 신상을 털어보는 것뿐인 것 같고요.
기죽지 마세요. 제가 보증합니다. 제가 뭐길래 보증하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진정한 심미안은 화려한 쇼핑백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안에 있습니다. 퇴근길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며 “아, 오늘 색감 죽이네”라고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꽤 괜찮은 심미안을 가진 사람입니다.
비록 지금은 지갑이 얇아 원하는 것을 다 해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동경하고 관찰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그 마음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결을 만듭니다.
도이치 그라모폰 300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유튜브 무료 스트리밍으로 듣는 쇼팽의 녹턴 한 곡에 눈물 흘릴 수 있다면, 나의 영혼은 그 누구보다 부유할 테니까요.
Fin. 취향은 돈이 아니라 시선
글 속의 글까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눈치채셨나요? 저는 물건 대신 ‘취향은 돈이 아니라 시선이다’라는 관점을 팔았습니다.
이것이 마더 콘텐츠의 힘입니다. 물리적인 제품이 없어도 매력적인 관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움직인 곳에 관심이 생기고, 그 관심이 반복되면 신뢰가 쌓입니다.
다만 여기까지는 아직 돈 버는 방정식의 전반부입니다. 나에게서 ‘취향’이라는 키워드를 꺼낸 것은 추출력, 그 관점을 글로 내놓고 반응을 확인하는 것은 검증력, 이 글을 중심으로 사람에게 반복해서 닿는 것은 도달력입니다.
이후 반응을 바탕으로 취향 아카이빙 템플릿, 큐레이션 커뮤니티, 1:1 취향 컨설팅을 만든다면 상품력이 됩니다. 그리고 관심을 보인 사람에게 “이제 직접 해보세요”라고 다음 행동을 제안할 때 판매력이 붙습니다.
나를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비즈니스가 되지 않습니다. 해체한 조각이 반응과 상품과 제안을 차례로 만나야 매출이 됩니다.
팔 물건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나에게 너무 익숙해서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키워드, 집착, 경험, 관점이 아직 이름을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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