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세기 제조업적 사고방식
수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데 어려워합니다. 왜 일까요? 비즈니스를 '물건(Product)을 파는 행위'라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도대체 뭘 팔아야 하지? 나에겐 제조 공장도, 코딩 능력도, 기발한 발명품도 없는데.” “역시 잘되는 아이템을 찾아야하는 것인가?”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 고민은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그건 아직도 20세기 제조업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니까요. SNS와 AI 시대에는 그런걸 고민하면 안됩니다. 아니 고민해도 되지만,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2025년(곧 26년이지만), 공급 과잉의 시대에서 물건은 넘쳐흐릅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은 '기능'이 아니라 '관점'이며, '제품'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2. '나'라는 원석을 해체(Unbundling)하여 팝니다.
사업이나 퍼스널 브랜딩이나, 본질을 파고들면 징그럽게도 똑같습니다. 결국 "내가 선정한 키워드(본질)를 남들에게 먹히도록 설득(콘텐츠)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상세페이지도 콘텐츠고, SNS 광고도 콘텐츠고, 내가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하는 자랑도 콘텐츠입니다.
“저는 팔 물건이 없는데요? 뭔가 팔아본적도 없고요.” 아닙니다. 제품이 없더라도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항상 무언가를 팔고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죠. 회사에 나라는 제품을 팔기 위해 자소서(상세페이지)를 작성하시고, 더 잘팔기 위해 대면 세일즈 (인터뷰)를 하기도 하죠.
아하, 팔고자하는 실체가 있는 물건이 없으시다고요? 그러면, 지금 집중해야하는 것은 뭘 팔지 외부를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관조해야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내가 집착하는 마이너한 취미, 남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나만은 불편해하는 그 지점. 즉, '나를 구성하는 키워드' 그 자체가 아직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입니다. 지금 시대의 창업은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해체(Unbundling)하고, 그 조각들을 시장이 원하는 언어로 재조립하는 편집의 과정입니다.
3. 키워드 하나가 비즈니스가 되는 메커니즘: 마더 콘텐츠(Mother Content)
제조력(유,무형 상품 모두) 상향 평준화된 시대의 비즈니스는 다르게 시작해야합니다. 비즈니스는 '아이템'이 아니라 '키워드 장악'에서 시작됩니다. 뭘 팔지 모르겠다고요? 그럼 어떤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들지부터 정하세요. 그리고 그 단어를 나만의 정의로 새롭게 해석하여 남들을 설득해야한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정리'라는 지루한 키워드를 '인생을 통제하는 기술'로 재정의하여 컨설팅을 팝니다. (곤도 마리에)
누군가는 '독서'라는 뻔한 키워드를 '성공을 위한 뇌 최적화'로 재정의하여 커뮤니티를 팝니다. (자청)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르코와 렉스가 강조하는 [마더 콘텐츠 (Mother Content)]입니다. 단순한 블로그 글이나 인스타 피드가 아닙니다. 내 사업체를 규정하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규정하는 나만의 헌법이자 선언문입니다.
이 마더 콘텐츠가 강력한 중력을 가지게 되면, 사람들은(Traffic) 나의 관점에 동의하며 모여듭니다. 그다음은 쉽습니다. 그때 가서 뭘 팔든 사람들은 살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그분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면 템플릿(DIY)이 되고, 같이 하자고 꼬시면 커뮤니티(DWY)가 되고, 귀찮으니 대신해달라고 하면 대행 서비스(DFY)가 됩니다. 비즈니스의 제형(Format)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본질은 내가 설계한 '키워드의 매력도'입니다.
4. 실전 시뮬레이션: '취향'이라는 모호함을 팝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추상적인 이론을 가장 모호하고 잡히지 않는 키워드인 '취향(Taste)'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취향은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선언할 겁니다. 저는 청개구리니깐요. 제 주장은 "취향은 돈이 아니라 시선이다"이며, 이 비주류 관점을 설득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보여드릴 글은, '취향'이라는 키워드를 장악하기 위해 설계된 마더 콘텐츠의 예시입니다. 이 글은 제품을 홍보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의 관점으로 이 키워드의 매력도를 끌어올릴 수 있게 노오-력해볼 것이랍니다.
한번 여기에 대한 제 관점을 팔아보겠습니다.
취향에 대한 마더콘텐츠
1. 도이치 그라모폰의 노란 딱지와 빨간 딱지의 라이카

솔직히 우리 모두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합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도이치 그라모폰(DG)의 노란 딱지 붙은 LP판들, 그리고 그 옆에 무심하게 놓인 빨간 딱지의 라이카 카메라. 친구들을 초대해 "아, 이건 1982년산 샤토 마고야. 탄닌이 아주 우아하게 풀렸지"라고 말하며 젠체하는 상상 말입니다.
아니시라고요? 아니시라면 어쩔수 없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아주 고전적인 질문이 하나 튀어나옵니다. "돈으로 산 물건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인가?"

삐에로쇼핑과 일렉트로마트와 기타등등 취향..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취향이 자동으로 탑재되는 건 아니라는(주로 부자들에게) 이야기입니다.
클래식 음반 300장을 일시불로 긁고, 수천만 원짜리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고 하시죠. 그렇다고 해서 집주인의 귀가 갑자기 카라얀의 지휘봉 끝 땀방울을 느끼는 '황금귀'가 될까요? 셔터만 누르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같은 결정적 순간이 찍힐까요? 천만에요. 대부분의 경우 그 음반들은 비싼 벽지가 되고, 그 카메라는 무거운 목걸이가 될 뿐입니다. 경제력은 '접근권'을 살 수는 있어도, '감식안'까지 패키지로 팔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소유의 착각입니다. 우리는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결제하는 순간, 이미 내가 일러스트 전문 작가가 된 듯한 기분에 젖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잔뜩 사서 쌓아두는 것만으로도 지식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일본어 교재를 사는 순간 이미 일본어 마스터가 된 것 같은 그 기분 좋은 착각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아이패드는 넷플릭스 머신이 되고, 일본어 교재는 책장 한켠에 존재하게 됩니다. 취향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사유하며 깎아나가는 조각품이니까요.
2. "돈이 없으면 취향도 사치다"라는 서글픈 반론

하지만 여기서 반론이 훅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아주 현실적이라, 조금 아플 수 있는 지적이죠.
"돈이 없는데 취향 타령이 웬 말이냐."
이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찔리지 않는다면 선생님은 거짓말쟁이거나, 아주 운이 좋은 분일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험이란 유료이기에, 취향이라는 것도 결국은 의식주가 해결된 뒤에 찾아오는 '잉여의 산물'일 때가 많으니까요.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가지 못해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스몰 럭셔리 같은 스시/한우 오마카세 한 번 가려 해도 며칠, 몇주 치 식비가 나갑니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피트 향을 즐기려 해도 돈이 듭니다. 매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며 내일 카드값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음식의 풍미를 즐기라"거나 "오페라의 선율을 느껴보라"고 하는 건, 어쩌면 폭력일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내 취향인지 아닌지 확인조차 못 하는 경우"는 분명 실재합니다.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는데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며, 평생 소주만 마셨는데 보르도 와인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난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물건을 못 사는 게 아니라,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할 수 있는지 탐색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 그것이 가장 잔인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3.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진짜'가 될 수 있을까?

‘비구매 덕질’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 불법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이상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생각을 약간 재밌게 비틀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플레이를 해야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 취향을 소비 행위와 동일시합니다.
골프를 좋아한다 = 골프채를 사고 필드에 나간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요? 새벽마다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챙겨 보고, 감독의 전술을 분석하고, 선수들의 이적 시장 흐름을 꿰뚫고 있다면, 비록 축구 하러 나갈 체력과 장비가 없더라도 그 사람은 '축구 애호가'입니다. 내 명의로 된 집을 지을 돈이 없어도, 안도 타다오의 도면을 찾아보고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을 공부하며 공간감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건축 문외한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1차원적 취향: 돈을 내고 직접 행하는 것 (소유와 과시)
2차원적 취향: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지식을 쌓는 것 (관조와 이해)
물론 직접 해보는 것만 한 경험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그 세계를 사랑할 자격까지 박탈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결핍은 때때로 더 깊은 몰입을 만들어냅니다. 가질 수 없기에 더 간절하게 바라보고, 닿을 수 없기에 더 깊이 연구하는 그 마음. 어쩌면 진정한 심미안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에서 잉태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4. 심미안은 '지갑'이 아니라 '시선'에서 나옵니다.
(두툼한 지갑이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요)
경제적 문제로 인해 지금 당장 명품을 두르거나 파리로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기죽지 마세요. 저는 취향은 구매력이 아니라 집중력이라고 봅니다.
무슨말이냐?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자극 중에서, 무언가를 멈춰 서서 바라보는 힘. 남들은 "그냥 풀이네" 하고 지나갈 때 "저 잎맥의 패턴이 참 기하학적이군"이라고 생각하는 시선. 남들은 "소음이네" 할 때 그 안에서 리듬을 찾아내는 귀. 이것이 바로 심미안의 본질이지 않나 싶습니다.
경제력은 이걸 발견의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비행기 표를 사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취향을 발견할 확률이 높겠죠. 하지만 그 기회가 곧바로 깊이 있는 취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루브르에 가서 모나리자 앞에서 셀카만 찍고 나오는 부자보다, 도서관 구석에서 렘브란트 화집을 닳도록 들여다보는 가난한 학생의 눈빛이 더 깊을 수 있습니다. 돈은 우리를 백화점으로 데려다주지만, 그 물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건 우리의 자기 성찰입니다.
육아 때문에, 대출금 때문에 미술관에 못 가신다고요? 아이를 재우고 넷플릭스에서 미술 다큐멘터리를 보며 전율을 느낀다면, 나의 취향은 살아있는 겁니다.
[실전 팁] 돈 들이지 않고 내 취향을 '아카이빙'하는 3가지 방법
이 두 가지만 꾸준히 해도 1년 뒤면 선생님은 친구들 사이에서 "어? 너 좀 보는 눈 달라졌다?" 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돈은 10원도 안 듭니다. 시간과 노력이 조금 들뿐이죠.
(여기에 나만의 방법론을 적어볼 수 있습니다.)
1. '음악 디깅 장인' 되기 (YouTube 활용)
나만의 방법론 → 예시)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대로 듣지 말고, 나만의 주제를 정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세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재즈', '노동요로 쓸 90년대 하우스 음악'.
곡을 선곡하고 순서를 배치하는 과정 자체가 고도의 '큐레이션' 훈련이랍니다. 남들은 TOP 100을 들을 때, 나는 나만의 DJ가 되는 것이죠!
2. 도시에서 '폰트(Font) 사냥'하기
나만의 방법론 또 적어주시기:
길을 걸으며 간판의 글씨체(타이포그래피)를 관찰하세요. 오래된 세탁소의 진지한 궁서체, 힙한 카페의 모던한 고딕체, 공공기관의 딱딱한 표지판. 사진을 찍어 모아보세요.
글자의 삐침 하나, 굵기 하나에도 만든 사람의 의도와 시대의 미감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삭막한 도시의 간판들이 거대한 디자인 미술관으로 변합니다!
Fin. 당신의 취향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종종 자신의 취향이 초라하다고 느낍니다. 남들은 주말마다 호캉스를 가고, 명품을 두르고, 비싼 취미를 즐기는 사진을 올리니까요. 내 취향은 고작 방구석에서 웹소설을 읽거나, 동네 산책을 하거나, 편의점 신상을 털어보는 것뿐인데 말이죠.
기죽지 마세요. 제가 보증합니다. (제가 뭐길래라고 말하신다면 할 말 없지만요)
진정한 '심미안'은 화려한 쇼핑백 안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안에 있습니다. 퇴근길,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며 "아, 오늘 색감 죽이네"라고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훌륭한 심미안을 가진 예술가입니다.
비록 지금은 지갑이 얇아 원하는 것을 다 해보지 못할지라도, 내가 무언가를 동경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 마음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결을 만듭니다.
그러니 도이치 그라모폰 300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유튜브 무료 스트리밍으로 흐르는 쇼팽의 녹턴 한 곡에 눈물 흘릴 수 있다면, 나의 영혼은 그 누구보다 부유하니까요.
진짜로 Fin.
글 속의 글까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저는 방금 여러분에게 단 하나의 물건은 팔지 않았습니다. 도이치 그라모폰 LP를 공구하지도, 라이카 카메라 구매 링크를 달지도 않았죠. 그래도 저는 이거 하나는 확신합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취향'이라는 단어에 제 관점이 티끌마나 더해졌을 것이라는 것을! 제 관점을 팔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더 콘텐츠]의 힘입니다. 물리적인 제품(Product)이 없어도, 매력적인 관점(Perspective)만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움직인 곳에 트래픽이 생기고, 트래픽이 모인 곳에 비로소 비즈니스가 싹틉니다.
여러분이 팔아야 할 것은 기능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가진 고유한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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