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세스 고딘의 『마케팅이다』를 덮으며 "그래, 나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벼. 어언⎰⎱화아(변화)'를 만드는 거야, 그러기 위해 온/오프라인에 나만의 '부족(Tribe)'을 건설하겠어!"라고 전율하는 사람들, 혹은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을 바이블처럼 끼고 앉아 "완벽함은 적이다, 일단 런칭하고 데이터로 '피벗(Pivot)'한다!"라며 MVP(최소 기능 제품)의 환상에 취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아마 카페나 공유 오피스에서 맥북을 켜두고, 빈 노션 페이지 하나를 띄워둔 채 아래의 질문들이 맴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 없을까?""다이어리 앱? 투두 리스트? 그런 건 너무 흔하잖아. 레드오션이라고."

이미지 제작자 파산토끼님 @pasan_tokki
땡, 틀렸습니다.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접근방법입니다. 아니, 정답일 수도 있습니다. 통장 잔고를 마이너스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입니다.
2025년(곧 26년이 되겠지만), 인구 구조는 무너지고 자본은 보수화된 이 대한민국 땅에서, 본도 인력도 없는 개인이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그 결말은 대개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첫째, 이미 누군가 시도했다가 뼈도 못 추리고 망했거나. 둘째, 애초에 돈을 낼 사람(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셋째,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대부분 국가의 돈이죠)으로 시도를 했거나.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는 참 달콤합니다. 하지만 초기 창업가에게 혁신은 기회가 아니라 재앙에 가깝습니다. 혁신은 막대한 R&D 비용과, 멍청한 대중을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시장 교육 비용'을 청구하거든요. 우리는 돈도, 시간도, 멘탈도 없는 소시민이지 않습니까? 혁신은 패시브 인컴이 빵빵하게 들어오거나, 부모님이 건물주인 분들에게 양보하세요. 책임질 부양자나 부양직원이 있다면, 거대한 혁신은 우리들의 적입니다. 그러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자잘한 혁신 찾으셔야해요.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의 개념과 사례 (+퍼플오션) | 잡학서고
그러니, 우리는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따분하고, 가장 지루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앱스토어에 이미 수천, 수만, 수십만 개가 널려 있는 그곳. 다이어리, 캘린더, 메모장, 가계부 같은. 피 냄새나는 레드오션으로 말입니다. 왜냐고요? 그곳에만 초보자가 부스러기 먹기 좋게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하게 검증된 현금(Validated Cash Flow)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뻔한 시장에서 뻔하지 않게 살아남는 법, 아니 꽤 짭짤하게 벌어들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Chapter 1. 시장의 해상도: 거대함은 필연적으로 부서진다

[주간 데이터동향] “SNS 자랑질은 이제 지겨워”…’아보하’ 트렌드로 다이어리 앱 인기
사람들은 흔히 '다이어리 앱 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봅니다. 그리고, "이미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서 있어.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라고 단정 짓죠. 하지만 이건 시장을 너무 낮은 해상도(Low Resolution)로 바라본 착시 현상입니다. 픽셀을 확대해 보세요. 거기는 빈틈 투성이입니다.
1-1. 욕망의 파편화: 시장이 커질수록 니즈는 쪼개진다.
생물학에는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글로 표기하니, 너무 어색하지만 그렇습니다.) 하나의 종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갈래로 분화하는 현상이죠. 자본주의 시장도 생물과 똑같습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진다는 건 단순히 사용자가 많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용자의 니즈가 세포 분열하듯 잘게 쪼개지고, 구체화되고, 파편화(Fragmentation)된다는 뜻입니다.
초기 시장에서야 "기록한다"는 기능 하나면 충분했죠. 하지만 시장이 성숙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까다로워집니다.
"무엇을 기록할 건데?" "어떤 기분으로?" "누구랑 공유할 건데?" "내가 이걸 쓸 때 힙해 보여?"
이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거대했던 '기록 시장'은 수만 개의 '마이크로 시장'으로 쪼개집니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건 전체 시장의 7-80%를 차지하는 '보편적 니즈'뿐입니다. 구글 캘린더나 노션 같은 항공모함들은 좁은 골목길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최대 공약수'를 만족시켜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밋밋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1-2. 좁은 니즈를 노려야한다.

수에즈 운하 같은 곳을 찾아보세요.
바로 이 지점, 항공모함이 들어올 수 없는 좁은 해협이 우리가 노려야 할 곳입니다. 대기업에게는 '시장 사이즈가 작아서(Market Size is too small)' 버리는 카드지만, 우리 같은 스타트업 종사자/솔로프리너/[대충 여러분 직업명을 넣어주세요.]에게 월 1,000만 원, 아니 1억 원은 인생을 바꾸는 돈 아닙니까?
시장이 포화되었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시장을 너무 멀리서 보고 있는 겁니다. 줌 렌즈를 당기세요. 쪼개진 파편 하나하나가 사실은 거대한 금광입니다.
르코&렉스의 생각: 날카로움의 역설
모든 기업의 생애 주기는 잔인하리만큼 똑같습니다. 시작은 송곳처럼 날카로운 '니치(Niche)'로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지만, 성장이라는 괴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결국은 뭉툭한 방망이가 되어 대중을 향하게 됩니다.
왜냐고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침이 마르게 이야기했던 '시장 규모(TAM)'의 한계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이죠. 좁고 깊은 우물 하나만 파서 평생 먹고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확장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뾰족함 하나로 시작한 기업도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건드리며 '적당히 많은 사람을 적당히 만족시키는' 평범함의 길로 들어서게 되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아직 잃을 게 없는 여러분은 이런 '평범함의 저주'에 걸리기 전입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날카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다른 스타트업병이 걸리신 분들을 따라하시기에는 너무 일러요.
Chapter 2. 기능의 해체와 맥락의 재조립 (Contextual Unbundling)

미국에서 수십년째 운영되고 있는 Craigslist라는 사이트가 언번들링 되어, 여러가지 서비스들로 바뀌었습니다.
자, 그럼 이 파편화된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까요? 여기서 '언번들링(Unbundling)'이라는, 저희가 요 근래 자주 사용하는 있어 보이는 단어를 꺼낼 때가 되었군요. 제품을 쪼개는 게 아닙니다. 맥락(Context)을 쪼개는 겁니다. (사실 이런걸 안하고도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하죠. 하지만, 이런작업을 하면 여기서 파생된 콘텐츠나 프로덕트를 찾기가 너무 용이해집니다.)
2-1. CRUD(Create Read Update Delete)는 죄가 없다.
개발자분들, 솔직히 다이어리 앱 만들자고 하면 김빠지시죠? 기술적으로 너무 쉬우니까요. 데이터를 쓰고(Create), 읽고(Read), 수정하고(Update), 지우는(Delete) CRUD의 무한 반복. "이딴 걸로 무슨 사업을 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아니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고자 한다면 엄청 복잡하게 만들 수 있으니깐요.
하지만 비즈니스의 가치는 코드의 복잡성이 아니라, 그 코드가 수행하는 맥락의 적합성(Contextual Fit)에서 나옵니다. 기능은 똑같이 '체크박스를 채우는 것'이지만, 그 행위가 일어나는 맥락은 수만 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능을 파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기능이 사용되는 '상황'과 '감정'을 파는 겁니다.
2-2.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틈새 벌리기.

자, 상상력을 좀 발휘해 보시죠. '기록'이라는 뻔한 기능을 가져와서, 아주 특수한 타겟의 삶 속으로 밀어 넣어봅시다.
Scenario A. 도파민 중독자를 위한 RPG 투두 앱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성인을 타겟으로 합시다. 이들에게 일반적인 리스트형 투두 앱은 고문 도구입니다. 지루해서 숨이 막히거든요. 여기에 '게임'이라는 맥락을 섞습니다. 할 일을 완수하면 몬스터가 피를 흘리고,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전설 아이템이 드랍됩니다. 기능은 투두 리스트지만, 맥락은 '도파민 파밍'입니다. (실제로 이런 제품들이 있습니다.)
Scenario B. 생존을 위한 무드 트래커
타겟을 더 좁힙니다. 우울증 약물을 복용 중인 환자들입니다. 이들은 긴 일기를 쓸 에너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의사에게 보여줄 데이터는 필요하죠. 글쓰기 기능을 과감히 없앱니다. 오직 '색깔'이나 '표정 아이콘'만으로 하루를 기록합니다. 약 먹었는지, 잠은 잤는지. 이건 '기록'이 아니라 '생존과 치유'라는 맥락이 됩니다.
보세요. 기능은 똑같은 CRUD입니다. 하지만 맥락을 쪼개는 순간, 이 앱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노션과 경쟁할 필요도 없죠. 초보 창업가의 승부처는 코딩 실력이 아니라, 이 거대한 덩어리 속에 숨겨진 빈 맥락을 찾아내는 '인문학적 눈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코딩 공부하면서 책을 더 읽어야한다는 것이죠. #문송하지 않습니다.
Chapter 3. 설득 비용 제로(0)에 도전하기: 지갑을 연 자들에게 팔아보기
비즈니스에서 가장 무서운 비용이 뭔지 아십니까? 임대료? 인건비? 서버비? 아닙니다. 바로 고객 교육 비용(Market Education Cost)입니다. 사람들에게 "이게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비용 말입니다. (사실 임대료, 인건비, 서버비 다 무서운 비용들이긴합니다.)
3-1. 설명하다가 늙어 죽는다

박찬호씨의 사인
여러분이 세상에 없던 '메타버스 기반 4차원 명상 앱'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축하드려요. 이제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고객에게 메타버스가 뭔지, 왜 고글을 써야 하는지, 이게 왜 명상에 좋은지 설명하다가 마케팅 예산과 시간의 90%를 날릴 겁니다. 낯선 것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니까요. 세일즈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면, 제발 남들이 모르는 건 건드리지 마세요.
3-2. 그러니, 이미 흐르는 강물에 숟가락 얹기

하지만 다이어리, 투두 시장은 다릅니다. 이곳은 WTP(Willingness to Pay, 지불 의사)가 이미 완벽하게 검증된 낙원입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더 나은 인간(Better Version of Me)'이 되고 싶다는 환상에 빠져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자신의 불안한 일상을 통제하기 위해 월 5,000원의 구독료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죠.
이들에게는 "왜 다이어리 앱을 써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결핍을 느끼고 있고, 앱스토어 검색창에 '다이어리'를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다가가서 귓가에 속삭이면 됩니다.
"지금 쓰는 그 앱, 다 좋은데 뭔가 당신한테 딱 맞진 않죠? 여기 당신의 그 미묘한 가려움을 긁어주는 효자손이 있습니다."
설득하지 말고, 제안(Offer)하세요. 시장을 창조하는 건 돈이 많거나, 시간이 많거나, 백이 크거나, 천재인 사람들에게 맡기고,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인 우리는 흐르는 물길에 숟가락만 얹읍시다. 그게 우리가 밥 굶지 않는 비결입니다.
Chapter 4. 깊게 들어가면 기능이 아니라 '정체성'을 파는 것이다.

르코&렉스의 노션으로 만들어진 책 『루틴 비즈니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결론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자아(Ideal Persona)'를 파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의 뉴스레터는 르코와 렉스가 얼마전 발행한 노션북 『루틴 비즈니스』(9,900원짜리지만 몇만원의 인사이트가 담겨있는)와 맞닿아 있습니다. 깨알같이 홍보해봅니다.
4-1. 앱은 디지털 액세서리다.
왜 사람들은 기능도 고만고만한 다이어리 앱을 철새처럼 갈아탈까요? 단순히 일정 관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노션(Notion)을 사용하는 사람은 "나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하며 구조적 사고를 하는 일잘러야." (비록 페이지는 텅 비어있을지라도)
아기자기한 스티커 다이어리 앱을 쓰는 사람은 "나는 내 일상을 소중하고 감성적으로 가꾸는 사람이야.”
미니멀한 검은 배경의 텍스트 투두 앱을 쓰는 사람은 "나는 복잡한 건 질색이야. 본질에만 집중하는 쿨한 미니멀리스트지.”
즉, 사용자는 앱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봅니다.
4-2. 기능은 뻔해도, 서사(Narrative)는 날카롭게
그러니 초보 창업가가 투두 앱을 만든다는 건, 체크박스 기능을 구현하는 게 아닙니다. 특정 집단(Niche)이 갈구하는 페르소나를 구현해 주는 '디지털 거울'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앱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닙니다. 진짜 성장에 미친 사람들만 쓰는 '하드코어 성장 앱'입니다." "이 앱은 복잡한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당신을 위한 '디지털 숲'입니다." 이런식으로 말이죠.
기능은 뻔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 기능이 담고 있는 서사와 타겟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야 합니다. 그 날카로움이 뻔한 앱을 '나만의 브랜드'로 만들어줍니다.
4-3. [Case Study] 양모펠트와 고양이 방의 기적
여기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트위터의 @binglehaepi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 계획을 세운 게 아닙니다. 시작은 그저 AI로 본인의 그림을 양모펠트 이미지로 바꿔보는 장난이었습니다. 그러다 욕심이 생겨 '양모펠트 친구를 돌보는 게임'을 기획했지만, 재미없어서 엎었습니다. 그다음엔 '성격 테스트 기반 친구 만들기'를 기획했지만, 구글 정책 문제로 또 엎었습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만든 것이 '고양이 방 꾸미기 다이어리 웹사이트'였습니다. 기능? 단순합니다. 일기를 쓰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고양이 방 이미지를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결과는? 트위터에서 바이럴이 터지며 조회수 20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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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0만, 리트윗 2,400 (1.2%), 좋아요 4,400 (2.2%), 북마크 3,600 (1.8%)]
이 숫자를 가지고 대략적으로 계산해 볼까요? 조회수 20만, 리트윗과 좋아요 비율을 고려했을 때 추정할 수 있는 클릭수는 5,720회, 그리고 클릭률(CTR)은 약 2.8%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광고 CTR이 1% 미만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죠.
우선 이걸 광고비(CPC 100원 가정)로 환산해보겠습니다. 단 하나의 트윗으로 57만 원어치의 마케팅 효과를 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있었다면, 아니면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또 달라집니다.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있었다면, 매출로 이어집니다. 반면, 판매할 제품이 없다면, 링크 내 구글폼을 더해서 구매할 사람들을 미리 모집할 수 있습니다. 가상으로 클릭해서 넘어온 분 중(5,720회) 1%가 구매를 했다고 아주 보수적으로 해보죠. 31건을 팔 수 있습니다.

사실 이분의 케이스를 보여드리는 것은 이렇게 뭔가 제작할 줄 모르는 사람도 아이디어와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뭐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분의 기록은 여기서 더 자세히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분이 콘텐츠로서 이니셜 성공한 이유는 '혁신적인 기술' 때문이 아닙니다. '귀여운 고양이 + 나만의 공간 꾸미기 + 기록'이라는 맥락을 기가 막히게 조합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복잡한 기능보다, 내 일기가 귀여운 고양이 방으로 변한다는 그 따스한 '서사'에 반응한 겁니다.
Chapter 5. 실행 전략: 발명가가 되지 말고 탐험가가 되세요
마지막으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이드를 드립니다. 제발 책상 머리에서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Step 1. 거대하고 지루한 카테고리 선정 하기
다이어리, 독서, 운동, 가계부, 명상. 앱스토어 순위권에 있는, 남들이 다 하는 그걸 고르세요. 레드오션일수록 좋습니다. 물고기가 많다는 증거니까요.
Step 2. 불만의 채굴 하기
앱스토어 리뷰, 레딧, 트위터, 스레드, 커뮤니티를 뒤지세요. 별점 5점은 거르고, 별점 1점과 2점을 보세요. 거기에 돈이 숨어 있습니다.
"기능이 너무 많아서 복잡해요." -> 심플함이 기회입니다. "너무 딱딱해서 쓰기 싫어요." -> 귀여움이 기회입니다.
남들의 불평은 여러분의 사업 아이템입니다.
Step 3. 제형의 변화 하기 (MVP)
앱(App)부터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제발요. 개발비 날립니다. 노션 템플릿, 엑셀 시트, 매일 아침 보내주는 카카오톡 알림, 뉴스레터. 이런 가벼운 제형으로 먼저 시작하세요. 이게 바로 MVP(Minimum Viable Product)입니다.
Step 4. 콘텐츠로 증명하기
기능을 만들기 전에, 그 맥락에 공감하는 콘텐츠를 먼저 뿌리세요. "ADHD인 제가 투두 리스트 쓰다가 30번 실패하고 만든 방법 풉니다." 이 글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초기 고객입니다. 그들이 모이면, 그때 제품을 만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을 꿈꾸는 당신에게

낭만 뜻: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긴 글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글이 여러분의 가슴 뛰는 혁신에 대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고작 다이어리 앱이나 만들어라"로 격하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답니다.
하지만 여러분, 혁신은 살아남은 자의 특권입니다. 배가 고픈 예술가는 붓을 들 힘조차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일단, 시장에서 검증된, 작지만 확실한 돈을 벌어들이며 생존하길 바랍니다. 그 지루하고 따분한 레드오션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작은 틈새를 찾아내어, 나만의 깃발을 꽂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셨으면 합니다.
진짜 위대한 혁신은, 그 지루한 생존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일단은 가장 흔해 빠진 곳으로, 가장 깊숙이 뛰어드세요. 거기에 여러분의 구원(그리고 현금)이 있습니다. 21세기의 구원은 빠방한 지갑에서 시작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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