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쯤 유럽의 수도원 필사실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창가에 앉은 필경사가 거위 깃펜으로 성경을 베끼고 있습니다. 한 권을 다 베끼는 데 빠르면 1년, 보통은 2년에서 3년이 걸립니다. 종이도 없어서 송아지 가죽을 씁니다. 참고로 성경 한 권에 송아지가 170마리쯤 들어갑니다. 그렇게 완성된 책 한 권의 값이 포도밭 한 뙈기와 맞먹었습니다. 이 시대에 책은 읽는 물건이기 전에 상속하는 재산이었습니다.

거기서 60년만 건너뛰겠습니다.
1517년 10월 비텐베르크의 무명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교회 문에 라틴어 반박문 한 장을 붙입니다. 대학가에 토론공고를 내는 관행이라 본인은 학내 게시판에 글 올린 정도의 일로 알았어요. 그런데 인쇄업자들이 그걸 가져다가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고 두 달 만에 유럽을 돌았습니다. 루터 본인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어리둥절함을 적었을 정도예요. 이후 몇 년간 독일에서 팔린 인쇄물 셋 중 하나가 루터의 글이라는 집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루터보다 100년 먼저 거의 같은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헤미아의 얀 후스입니다. 교회의 부패를 공격했고 면죄부를 비판했고 성서를 자국어로 읽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1415년에 화형당했습니다. 두 사람의 주장은 비슷했습니다. 차이라면, 그것을 옮기는데 드는 값이었습니다.
후스의 시대에 주장 하나를 복제하려면 필경사가 3년을 매달려야했습니다. 루터의 시대에는 인쇄기 하루만에 복제할수 있습니다. 왜 반천년 전 이야기로 이번 챕터를 여냐면, 시대 전체가 바뀔 때 장사꾼이 해야 할 일은 하나라서 입니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를 가려낸 다음, 변하지 않는 곳에 내 능력을 옮겨 심는 일입니다.
제프 베조스는 강연을 가면 늘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10년 뒤에 뭐가 변할 것인가?” 인간은 항상 미래가 궁금하죠. 하지만 그는 가장 값비싼 질문은 그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 무엇인가.
10년 뒤의 고객이 배송이 좀 느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리는 없으니 아마존은 빠른 배송에 수십 조를 묻은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예측의 영역이고, 예측은 거의 틀립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투자의 영역이고, 장기 투자에는 복리가 붙습니다.
문제는 전환기의 한 가운데에 서있으면 뭐가 변하고 뭐가 남는지가 안 보인다는 겁니다. 그걸 가려낼 레퍼런스는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이미 끝난 전환기들입니다.
역사에서 혁명이라 불린 사건들을 뜯어보면 공통점이 나옵니다. 새 기술이 등장한 해에 판이 뒤집히는 일은 드물어요. 판이 뒤집히는 것은 그 기술이 어떤 공급가를 ‘0’ 근처까지 떨어뜨리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가격 하나가 0으로 떨어질 때마다 세상은 같은 시나리오로 흘러갔습니다. 희소성이 옆으로 옮겨가는 것.
그 시나리오를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교회는 인쇄기의 첫 번째 대형 광고주였습니다.
인쇄 이야기를 조금 더 파겠습니다. 재밌는 대목이 많거든요.
구텐베르크가 1455년쯤 찍은 42행 성경은 180부 정도였고 한 부에 30플로린에 팔았습니다. 당시 사무원 연봉 3년치였어요. 인쇄기술이 발명된 초창기의 일입니다. 그후 인쇄소가 유럽 260여 개 도시로 번졌고 1500년까지 찍어낸 책이 2천만 부로 추산됩니다. 그 앞의 천 년 동안 유럽 필경사들이 만든 총량과 맞먹거나 넘는 양이 50년 만에 나온 겁니다. 그러자 책값은 한 세대 만에 종잇값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기계의 첫 번째 대형 고객이 교회였습니다. 역설적이죠. 구텐베르크 공방의 초기 주력 상품 중 하나가 면죄부 양식이었습니다. 손으로 쓰던 면죄부를 인쇄로 대량 발급하니 교회 입장에서는 매출 혁신이었죠. 그런데 60년 뒤에 바로 그 면죄부를 공격하는 루터의 글이 같은 기계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기계는 발주처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복제 비용이 0으로 가면 그 혜택은 기존 질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열립니다. 그리고 공평한 판에서는 대개, 지킬 게 많은 사람이 집니다.
이제 아까 말한 시나리오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책이 흔해지자 무엇이 귀해졌을까요? 공급가가 0으로 떨어지면 희소성은 사라지지 않고 옆으로 옮겨 간다고 말했습니다.
책의 시대에 귀해진 것은 읽을 줄 아는 눈과 쓸 거리였습니다.
문맹률이 국력 지표처럼 중요해졌고 저자라는 직업이 태어났으며 무엇을 찍을지 고르는 출판업자가 힘을 갖게 됩니다. 인쇄 이전의 필경사는 남의 글을 베끼는 값으로 먹고 살았는데 인쇄 이후의 문필가는 자기 글을 파는 값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복제가 공짜가 되자 이 판의 병목이 복제에서 내용으로 옮겨간 겁니다.
하역비가 97% 떨어지자 공장이 바다를 건넜습니다

1950년대 미국 부두는 인력의 세계였습니다. 배 한 척에 잡화가 오면 인부 수십 명이 자루와 나무 상자와 드럼통을 하나씩 어깨에 지고 내렸어요. 배가 항구에 묶여 있는 시간의 절반이 짐 싣고 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도난도 일상이라 부두 노동자들 사이에 위스키 화물이 지나가면 반은 증발한다는 농담이 돌았죠. 이 시절 잡화 하역비가 1톤당 5.86달러였습니다.
트럭 회사 사장이던 말콤 맥린이 여기에 의문을 갖습니다. 짐을 낱개로 옮기지 말고 트럭 짐칸째 배에 실으면 어떨까. 1956년 4월 26일, 개조한 유조선 아이디얼X호가 스틸 상자 58개를 싣고 뉴어크 항을 떠나 휴스턴으로 갑니다. 이날 하역비가 톤당 16센트로 계산됐어요. 5.86달러에서 16센트, 97% 하락이었습니다. 덕분에 아래처럼 변화가 생겼습니다.
크레인 한 대가 인부 백 명의 일을 해치웠습니다.
배가 항구에 묶이는 시간은 며칠에서 몇 시간으로 줄었습니다.
화물이 봉인된 컨테이너에 담기니, 부두에서 위스키가 증발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화가 되었기에, 우리들의 현재 방들도 혜택을 입었습니다. 운임이 상품 가격에서 반올림 오차 수준이 되자 공장을 소비자 근처에 둘 이유가 사라졌어요. 공장은 임금이 싼 곳으로 바다를 건넜고, 부품 하나가 국경을 예닐곱 번 넘는 공급망이 정상이 됐습니다. 세계화라고 부르는 현상의 상당 부분이 이 컨테이너 상자에서 나온 자손입니다.
물건 나르는 값이 0으로 가자, 물건 만드는 능력 자체가 흔해졌습니다. 어느 공장이든 비슷한 물건을 찍을 수 있게 되니까요.
이렇게 제조가 흔해진 시대에 귀해진 것은 설계와 브랜드와 고객 명단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뒤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번 회사들의 목록을 보면 공장 없는 회사들이 위로 올라옵니다. 나이키는 신발을 한 켤레도 직접 안 만들고, 애플은 아이폰을 한 대도 직접 조립하지 않습니다. 만드는 일은 값이 싼 쪽에 떠넘기고 돈 나가는 설계 기술과 브랜드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이죠.
포드의 컨베이어벨트는 물어보는 값이 비싸던 시대의 답안이었습니다
1908년에 헨리 포드가 T형을 내놓습니다. 출시가 825달러였고 1913년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 움직이는 조립 라인이 깔린 뒤로 차 한 대 조립 시간이 12시간 반에서 93분으로 줄었어요. 값은 1925년에 260달러까지 내려갔고 단종까지 1,500만 대가 팔렸는데 그 1,500만 대의 색이 전부 검은색 한 가지였습니다. 검은 도료가 제일 빨리 말랐거든요. 고객이 무슨 색을 원하는지는 굳이 물어볼 생각도 안했습니다.
여기서 포드를 고집불통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그 시대는 이게 정답이었어요. 차종 하나를 새로 내려면 금형과 전용 설비와 라인 개조에 지금 돈으로 수천억 원이 들어갑니다. 즉, 시장에 이렇게 만들면 살거냐고 물어보는 행위 한 번의 값이 공장 한 채였다는 뜻이에요. 물어보는 값이 그렇게 비싸면 합리적인 전략은 하나뿐입니다. 묻지 말고 확신해야합니다. 그리고, 한 종을 정하고 규격을 통일하고 최대한 많이 찍어 단가를 바닥까지 내려야합니다. 소품종의 대량 규격화, 이게 산업시대의 근대화였습니다. 학교와 군대와 아파트가 같은 문법으로 지어졌어요.
이 답안지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은 곳이 전후 일본입니다.
도요타는 포드를 베끼고 싶어도 베낄 수가 없었어요. 자본이 없어 재고를 쌓아둘 돈이 없었고, 내수 시장이 작아 한 차종을 백만 대씩 팔 수도 없었습니다. 트럭도 필요하고 승용차도 필요한데 각각 조금씩만 팔리는 시장이었죠.

생산 담당 오노 다이이치가 1956년에 미국을 견학하는데, 정작 다이이치의 눈을 붙든 곳은 슈퍼마켓이었습니다. 손님이 선반에서 집어간 만큼만 뒤에서 채워 넣는 방식을 확인했습니다. 팔린 만큼 만든다는 원리를 파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를 공장에 이식한 것이 저스트 인 타임입니다. 재고를 자산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여겼죠.
프레스 금형 하나 바꾸는 데 반나절씩 걸리던 작업을 도요타는 10분 아래로 끌어내렸습니다. 금형 교체가 빨라지면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번갈아 찍을 수 있고, 그 말은 물어보는 값이 싸진다는 뜻입니다. 시장에 조금 내보고 반응 보고 바꾸는 일이 공장 수준에서 가능해진 거예요.
이 방식을 의류가 이어받습니다.
자라는 디자인에서 매장 진열까지 2주짜리 벨류체인을 만들었습니다. 신상을 소량만 찍어 매장에 걸고 팔리는 것만 증산합니다. 매장 자체가 설문지고 계산대가 응답지입니다.

쉬인은 여기서 더 내렸습니다. 신상 한 종의 첫 주문이 100장에서 200장입니다. 앱에 올려 며칠 반응을 보고 팔리면 리오더, 안 팔리면 그 200장으로 끝입니다. 이 시험을 하루에 수천 종씩 돌립니다. 포드가 공장 한 채를 걸고 하던 질문을 쉬인은 200장을 걸고 하는 거예요.
도달의 값은 0이 됐는데 관심의 값은 그대로입니다
이제 우리 세대에 일어난 일을 같은 시나리오로 읽겠습니다. 첫 번째로 0이 된 가격은 도달입니다. 우선 이 가격이 원래 얼마짜리였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30년 전에 여러분이 오늘 만든 무언가를 백만 명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해보겠습니다. 경로가 사실상 셋이었어요. 1) 방송 2) 신문 3) 전단지 입니다. 방송 전파는 국가가 희소 자원으로 관리해서 면허 없이는 송출 자체가 불법이었습니다. 그 면허를 쥔 방송사의 광고 시간은 분 단위로 값이 매겨져 대기업 마케팅 예산이나 감당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신문은 윤전기 한 대가 아파트 수십 채 값이라 지면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독자 투고함에 편지를 넣고 기도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백만 명에게 도달되는 건 능력의 문제이기 전에 신분의 문제였습니다. 마이크는 상속되는 물건이었거든요.
지금은 계정(방송사) 하나 만드는 데 0원이고, 오늘 올린 콘텐츠 조각이 오늘 심사받고 오늘 수십-수백만 명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도달이라는 상품 값이 0이 된 겁니다.
그런데 ‘0’이 되자 문 앞에 줄이 생겼습니다. 유튜브에 1분마다 올라오는 영상이 500시간 분량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시청해도 오늘 하루 업로드된 영상을 다 못 보고 죽습니다. 도달이 공짜가 되자 콘텐츠 공급이 폭발한 거예요.
이 사태를 반세기 전에 미리 적어둔 사람이 있습니다.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1971년에 쓴 글인데, 핵심은 이렇습니다.
“정보가 풍요로워지면 관심이 빈곤해진다.“
도달이 흔해지자 귀해진 것은 관심입니다. 그리고 관심은 공급을 늘릴 방법이 없는 자원이에요. 스마트폰 사용 시간 통계가 몇 년째 하루 다섯 시간 언저리에서 멈춰 있는 이유가 이겁니다. 늘어날 데까지 늘어나서 만석이 됐어요.콘텐츠 공급은 무한히 늘 수 있는데 관심 공급은 한 시간도 못 늡니다. 도달의 값이 0이 된 시대에 관심의 값이 사상 최고가를 치는 이유입니다.
0원이 되어버린 또다른 한 가지
그리고 지금, 남아 있던 마지막 가격이 떨어지는 중입니다. 만들어보는 값입니다. 몇 년 전까지 작은 회사가 무언가를 만들어 시장에 물어보려면 견적서 서랍을 열어야 했습니다.
상세페이지 디자인 외주가 몇십만 원입니다.
브랜드 영상 한 편이 수백만 원입니다.
앱 시제품 외주가 싸게 잡아 3천만 원, 제대로 하면 억대입니다.
여기에 숨은 비용이 하나 더 있는데 시간입니다. 외주는 견적에 2주, 시안에 한 달, 수정에 또 몇 주가 걸려요. 그러니까 시장에 질문 하나를 던지는 데 몇백만 원과 두어 달이 들었다는 겁니다. 질문 값이 이러니 작은 회사는 1년에 몇 번 못 물었고 못 물으니 한 번 물을 때 크게 걸었으며 크게 걸었으니 틀리면 크게 다쳤어요. 포드의 계산의 규모만 줄어서 반복되던 거예요.
그리고, AI가 이걸 초압축해버립니다.
글이 분 단위로 나오고 시안이 시간 단위로 나오고 돌아가는 시제품이 주말 안에 나옵니다. 두어 달짜리 질문이 하루짜리 질문이 된 거예요. 여기서 만들어진 품질 시비는 당연히 있습니다만, 방향은 시비가 안 붙습니다. 필사본에서 인쇄로 넘어가던 반세기 동안에도 인쇄본은 필사본의 품격이 없다는 불평이 넘쳤거든요. 조잡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바꿨죠.
물어보는 값이 공장 한 채에서 시제품 한 개로, 시제품에서 콘텐츠 한 장으로 내려왔는데, 이제 그 조각을 만드는 값마저 0으로 값니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많이들 착각하는 거고요. 여기서 0은 모두에게 0입니다. 나만 0이 아니라요. 이걸 오해하고 있다는 반증이 바이브코딩 강의 듣고 간단한 앱을 만들어 파는 유행입니다. 안 팔립니다. 누구나 만들수 있으니까요. 인쇄기가 루터 전용 장비였던 적이 없듯이 AI는 여러분의 경쟁자도 쓰고 있습니다. 만드는 값이 0이 되면 만들어진 것들이 폭발하고, 그렇게 폭발하면 방금 본 관심 만석 사태가 더 심해집니다.
공급 제로는 축복이기 전에 평준화예요. 그럴싸하게 만드는 능력은 이제 실력 축에 못 낍니다. 모두가 갖게 된 능력이니까요. 10년 전에는 영상 편집을 할 줄 안다는 것 자체가 밥벌이 기술이었는데 지금 그 기술의 시세가 어떻게 됐는지 보시면 됩니다. 0으로 가는 가격 위에 쌓은 숙련은 감가상각이 무섭게 빠른 자산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의 목록에 능력을 옮겨 심어야 합니다
이제 서두에 연 베조스 질문으로 돌아올 차례입니다.
필경사 → 인쇄술 - 복제 0원
하역인부 → 크레인 - 하역 0원
방송사 → SNS - 도달 0원
에이전시 → AI 에이전트 - 제작 0원
전부 0을 향해 떨어졌거나 떨어지는 중입니다. 이 항목들 위에 세운 능력과 사업은 시한부입니다. 수 세기에 걸쳐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값이 안 떨어진 것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관심입니다.
지금 이 시점, 가장 귀하고 평생 변하지 않을 자원입니다. 하루 24시간에서 한 시간도 못 늘어나는 자원이라, 공급이 폭발하는 시대마다 값이 오르기만 했습니다. 500년 전에 귀했던 읽을 줄 아는 눈이 지금은 읽어줄 마음으로 이름만 바뀌어 여전히 병목입니다.
둘째, 신뢰입니다.
신뢰는 복제가 안 되는 물건입니다. 그럴싸한 글은 이제 기계가 분 단위로 뽑지만, 그 글을 읽고 이 사람 말은 믿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기까지의 시간과 반복은 한 건도 자동화가 안 됐습니다.
셋째, 장부입니다.
앞서 단골 장부의 효력이 틱톡 때문에 정지되어 버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때의 장부는 SNS 계정의 팔로워를 의미합니다. 관계를 중심으로 도달을 만들던 알고리즘이 콘텐츠 낱장 하나 하나의 반응도에 따라 도달을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팔로워 숫자는 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면 도달시킬수 있는 장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메일 주소 또는 전화번호가 있는 DB입니다. 단, 이 DB에는 어떤 콘텐츠에 반응했고, 어떤 콘텐츠에는 반응하지 않았는지 피드백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욕망입니다.
베조스의 답이 이거였죠.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예쁘게, 더 인정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객의 욕망은 수백 년째 개정판이 안 나왔습니다. 바뀌는 것은 그 욕망을 담은 껍데기 뿐이에요. 그 껍데기가 바로 제품입니다. 예컨대 더 빠르게 가고 싶다는 욕망을 마차 → 자동차 → 기차 → 비행기가 바꿔가며 채워주고 있죠.
이 네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저절로 나옵니다. 여러분의 공부 시간표와 노동 시간표를 열어서 지금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지 세어보세요.
편집 기술을 연마하고, 디자인 툴을 배우고, AI로 더 그럴싸하게 만드는 법을 익히고 있다면 곧 상장폐지될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는지, 그들이 뭘 욕망하는지 캐물으며, 물을 때마다 콘텐츠와 제품을 고쳐서 신뢰를 얻고, 그들과 다시 만날 이메일/연락처 명부를 옮겨 적고 있다면 평생 우상향하는 주식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투자하세요.
그동안의 모든 회사는 두 가지에 가장 많은 비용(시간/돈/인력)을 써왔습니다.
원하는지 물어보기
만들기
사람들이 원하는 걸 싸게 만들면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되는, 간단한 산수입니다. 그래서 경영기술은 딱 두가지, 더 저렴하게 물어보고 더 저렴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포드는 공장 한 채를 걸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안 물었습니다.
도요타는 라인 하나를 걸고 물었습니다.
자라는 한 시즌 물량을 걸고 물었습니다.
쉬인은 200장을 걸고 물었습니다.
글로시에는 블로그 글 한 편을 걸고 물었습니다.
뷰티 브랜드, 글로시에는 시제품조차 만들기 전에 콘텐츠 조각 하나로 물었고, 물으면서 동시에 팔았습니다. 창업 교과서들이 말하는 린 스타트업도 물어보기 기술 중 하나입니다. 공장 대신 만들다만 시제품(MVP)으로 물어보라는 거죠.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고 시장 반응을 빠르게 검증하기 위해 핵심 기능만 담아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으로 만든 초기 모델을 뜻합니다.
회사가 가장 많은 돈을 써왔던, 원하는지 물어보는 값이 0원으로, 만드는 값이 0원을 향해 감에 따라 마케팅, 브랜딩, 세일즈, HR등 우리가 아는 모든 사업의 방법론은 폐기하거나 다시 쓰여질 필요가 있습니다. 물어보는 값이 비싸서 마케팅하고 브랜딩했던 거거든요.
모든 회사는 모르는 사람을 단골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업의 본질이자,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상수입니다.

0단계: 모르는 사람
1단계: 아는 사람
2단계: 공감한 사람
3단계: 끌린 사람
4단계: 산 사람
5단계: 다시 산 사람(단골)
모르는 사람에서 단골로 만드는 각 단계를 하나씩 옮기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설득이며, 회사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은 쉽게 말해 시장 크기입니다. 흔히 말하는 TAM-SAM-SOM인데 그중 목표시장인 SAM에 가깝습니다. 아는 사람은 조회수나 순 방문자수등 나 또는 회사를 인지한 사람입니다.
TAM, SAM, SOM은 GTM(Go-to-Market) 전략에서 시장 규모를 이해하고 타겟을 설정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TAM: 전체 시장 (이론적 최대 시장)
SAM: 서비스 가능한 시장 (현실적 접근 가능)
SOM: 실제로 점유 가능한 시장 (마케팅 및 경쟁 분석 반영)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바꾸는데 필요한 자원이 “관심”입니다.
공감한 사람은 내 콘텐츠를 보고 가볍게 설득된 사람입니다. 이 숫자만 많은 사람을 우린 인플루언서라고 부릅니다. 끌린 사람은 구매 전에 관심을 표명한 사람으로 이것이 새로운 단골 장부입니다. 과거엔 팔로워(공감한 사람) 1천명이면 먹고 살수 있다는 말이 있었죠. 앞서 설명했듯 알고리즘의 변화로 팔로워에게 도달되는 비율이 최소화되었기 때문에 끌린 사람의 장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을 끌린 사람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자원이 “신뢰”이며, 신뢰하면 “장부”가 만들어집니다.
끌린 사람의 욕망/문제를 해결할 제품을 구매하면 산 사람이 되고, 반복적인 가치나 또는 더 큰 문제를 해결해주면 다시 산 사람이 됩니다.
끌린 사람을 사게 만들고 다시 사게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이 “욕망”을 담은 제품입니다.
관심, 신뢰, 장부, 욕망으로 모르는 사람을 단골로 만드는 일이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고 회사가 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됐다면 동료에게 보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