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2025년 11월 1일

나 작동법 알기: 의사결정 매뉴얼

원칙, 신념, 철학

이 글은 2025년 11월 1일에 르코&렉스 레터로 보낸 글입니다. 글 속 신청 안내와 일정은 보낸 날 기준입니다.

25년이 두 달 남은, 11월 1일의 뉴스레터입니다.

토요일은 제(르코)가 뉴스레터 발행을 담당하는데요. 좀 말랑말랑한 주제로 생각을 펼쳐보고 오래 걸어서 길어올린 문장을 보내드려보자는 의미에서 '주말반’을 자청했습니다. (수요일은 렉스님)

멀리보는 주말이 될수 있도록 25년 된 생각을 나눕니다. 😃

제가 남들보다 이거 하나 만큼은 가장 많이, 남다르게 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사결정”입니다. 대체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서 결정을 내릴 때 사전에 뭘 해야하는지, 사후에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그래서 그걸 다시 내 결정에 어떻게 반영하는지 항상 생각해야 했습니다.

좋은 결정을 내리려면 어려운 결정을 많이 내려보면 되는데요. 중학교 때 장래희망부터 대입, 자퇴, 창업, 생사까지 모든 크고 작은 결정을 제가 내렸습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는 ‘나는 살겠다’는 결정도 내려야 했습니다. 죽을지 살지 결정할수 있었거든요. 그때 왜 죽지 않고 살것인지 오랫동안 생각했고, 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터프한 상황에서도 의사결정을 비교적 빠르게 내리는 편입니다.

최근 2년은 매일같이 글을 읽고 쓰는 게 일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생각의 해상도가 올라가고 내 언어로 전환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내 언어가 된다는 건 의사결정을 내릴 때 관점과 기준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30년간 제가 받아들인 언어중 의사결정에 반복적으로 적용하는 문장들을 추려보자는 생각이 들어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뭐라 이름 붙일까 하다가 이렇게 불러보기로 할게요.

“의사결정 매뉴얼”

르코의 의사결정 매뉴얼

1. 가족에게 돈 빌리지 않는다.

창업을 하기로 맘 먹고 가장 먼저 다짐한 것입니다. IMF시절 부도, 해고, 빚보증은 뉴노멀이었죠. 저 역시 IMF키즈로 자라서 사업이 어떻게 파국을 맞으며 그때 리더이자 가장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생생히 목도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하기로 맘먹고 가장 먼저 다짐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에게는 돈을 빌리지 않기로. 당시에는 경험에서 비롯된 “의지치”정도였지만 내 비전에 동의한적 없는 사람과 책임을 나누는 건 지금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오래된 항목이고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으니 원칙이라 불러도 되겠습니다.

2. 뭘 안 할지 정해라.

뭘 하는 건 실행 즉시 비용이, 뭘 하지 않는 건 실행 즉시 수익이 발생합니다. 더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다 뭘 하라고만 하기 때문이고 뭘 더 하고 있으면 왠지 나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불안해서 열심히 오버엔지니어링(Over engineering) 하는 것이지 지금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어서 하는 게 아닐수 있습니다. 덜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이걸 납작하게 표현하면, 선택집중입니다.

자연계의 엔트로피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며 이때 무질서도를 질서있게 돌려놓기 위해 필요한 것을 ‘일’이라고 합니다. 즉, 일은 정리정돈하여 복잡성을 낮추는 것을 뜻합니다.

참고로, 사업을 하든 뭘 하든 초반에는 Do보다 Do not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면 안되는 것만 정해도 실패의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3. 선택지에 답은 없다. 빨리 선택해서 답으로 만든다.

4지 선다형 객관식에 익숙한 우리는 대체로 선택지에 답이 있다고 믿습니다. 비단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손실 회피 심리는 정답을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단보다는 결정을 지연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대다수가 안하는 건 일단 하는 편입니다. 하게 되면 즉시 차이가 발생하고 이게 반복되면 격차가 되고 종국에는 희소한 나만의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지연해서 좋은 선택지를 얻는 사람보다 빨리 결정해서 자신이 통제하는 선택으로 만든 사람이 더 이익이 큽니다. 이걸 오래 반복하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질수 있어요. 선택지에는 답이 있을수도 있지만, 저는 없다고 정해둡니다. 그래야 미련없이 선택하고 그걸 답으로 만드는 데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을수 있습니다.

4. 활을 쏘고 과녁을 그려라.

보통은 잘 그려진 과녁을 향해 활을 쏩니다. 10점이 어렵기도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몇천만 명이 같은 과녁(서울대, 대기업)에 대고 쏘지만 10점에 들어갈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 쏘면 그 격차가 한 눈에 보여서 계급화(서울대 과잠)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2번에서 언급한 것처럼 쉽사리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결정 지연상태에 놓이게 되고 더 좋은 활을 얻기 위한 스펙 경쟁에 돈과 시간을 쓰게 됩니다.

저는 지금껏 내가 좋아하는 벽에다 활을 쏘고 과녁을 그려왔습니다. 이때 제 점수는 반드시 10점입니다. 대신 엉뚱한 데서 삐뚤빼뚤하게 동그라미 그리고 있으면 주변에서는 걱정하거나 그게 되겠냐며 비아냥 댈 것이고 나는 이게 맞나 싶어서 불안합니다. 10점을 얻으려면 잃는 게 있어야 하니 합리적이지요. 근데 이 과녁을 근사하게 그려내면 미디어에서 성공신화로 그려낼 것이고 그럼 표준 과녁이 되어서 사람들이 여기다가 활을 쏘기 시작합니다.

과녁도 잘 그려야 하지만 언제까지 과녁만 그릴수는 없습니다. 활을 잘 쏘는 법도 알아야 하죠. 그래서 적절히 섞어가며 할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5. 통제할수록 자유롭다.

수가지 변수(도전)를 동시에 다루지 않습니다. 상수화된 삶을 만들어 가장 위험한 변수 하나를 다룹니다. 10개의 변수를 동시에 다루면 풀이가 늦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탐색이 필요한 2-30대 중반까지는 마음껏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도전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취하면 성과를 내야할 때에도 탐색만 합니다. 방향을 뚜렷하게 정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상수로 만드는 노력을 합니다.

워렌 버핏이 매일 아침 햄버거에 콜라를 마시는 거나 주커버그나 잡스가 만날 같은 옷과 신발을 신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삶이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렸습니다. 통제된 삶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한 필수 조치입니다. 가장 원하는 삶으로 향하기 위한 유일한 변수,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6. 방향은 가지되 목표는 가지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깨달은 문장입니다. AI 사회로 가는 지금, 발전의 속도와 그로인한 불확실성은 한낱 인간인 내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인정을 하고 나니 15년 넘게 사업계획서를 놓은적 없던 제 삶의 방식을 바꿔야했습니다. 그래서 설정한 매뉴얼입니다.

종종 제 활동을 지켜보던 지인과 만남을 가지면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뭐예요?”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나 봅니다. 처음엔 사실 좀 큰 계획이 있었는데 거의 3개월 단위로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굳이 5년 뒤 계획, 아니 1년 뒤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서 지금은 분기 단위의 목표만 정하고 움직입니다.

AI가 얼마나 빨리, 어떻게 미래를 그려낼지 아무도 모르는데, 목적지를 정하고 달려나가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큰 틀의 방향(대세)은 정하고, 뭘 근거로 다음 액션을 할것인가를 정해야하겠지요. 고객의 니즈입니다. 뻔한 말이지만 비즈니스는 이것이 진리입니다. 단, 빠르고 높은 정확도로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가설을 세워 최소 비용으로 검증하고, 높은 수익을 내는 일련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얼마나 탄탄하게 구축하느냐의 게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7. 성장은 어제보다 +1을 만드는 거다.

한 때 세상을 바꾸려고 사업을 했습니다. 목적지에 마음이 이미 가 있었죠. 그때 제 단어 사전에 성장의 자리에 성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건 목적지에 가기 위한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하루 하루 성장한다는 감각은 퇴화했죠.

전 직장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 정확한 맥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을 만들면 된다”는 그의 말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아마도 당시 창업을 멈추고 회사 생활을 해나가던 터라 성공보다는 성장의 감각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1을 만들려면 이전의 값이 필요합니다. 그게 어제입니다. 쉽게 말해, 어제의 사소한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이걸 반복하면 성장합니다. 그 끝은 목적지가 될 것이고요.

큰 뜻을 품고 거기에 눈과 마음을 두고 사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놓여서 어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 감각을, 저는 15년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8. 사실을 이기는 건 일관성이다.

덤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을 때, 그게 호랑이인지 토끼인지 사실 확인하려 다가간 조상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일단 내빼고 본 쪽이 살아서 지금의 우리에게 DNA를 물려줬죠. 인간은 사실보다 일관된 선택으로 생존의 확률을 높이며 진화한 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것이 생존의 언어였으니까요.

얼마전 재미있는 통계를 봤습니다. 주식을 하는 20~60대까지 개인 투자자들의 수익율을 비교한 기사였는데요. 누가 수익율이 가장 높았을까요? 60대 여성입니다. 가장 낮은 그룹이 20대 남성입니다. 사실이라 믿고 싶은 정보를 탐색하며 매도매수를 반복하는 것보다 그냥 넣어두고 가만히 두는 쪽이 돈을 더 많이 벌었다고 하니 저는 이 통계를 보며 한번 더 확신을 할수 있었습니다. “일관된 선택이 더 유리하다.”

9. 중간값이 많을수록 선택지가 많아진다.

이건 정치시사 뉴스를 듣고 SNS를 하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쉽고 편합니다. 유튜브를 위시한 미디어는 이러한 콘텐츠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이거 아니면 저거로 구분하고 나아가 극단적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둘로 쪼갭니다. 그 결과, 극단적 상황은 심화됩니다. 직장 다니는 게 불행하면 창업한 지인이 부러워 창업을 해야하나 고민하고, 창업에 지친 대표는 월급 받는 게 최고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직장은 불행, 창업은 도전이라는 납작한 이분법은 우리를 가스라이팅하고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몰고 갑니다.

극단에 사람이 많다는 말은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중간값을 계속해서 찾으며 경계에 놓이려고 합니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클때는 보수적인 결정을 하고 변화가 필요할 때는 진보적인 결정을 할수 있습니다. 보수적인/진보적인 결정 안에서도 무수한 중간값이 있습니다.

20대 후반에 창업하여, 인생에 선택지가 없을 때 기회 하나 하나가 귀하고 절박했습니다. 그때 가장 질 낮은 결정을 많이 했고 꽤 자주 이런 절박함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불가피하피 하게, 일했습니다. 그래서 배웠죠. 인생에서 늘 선택지를 2개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케세라세라(될대로 되라지)의 마인드로 딜을 할수 있다고 말이죠.

10. 완전히 이타적이면 이기를 채울수 있다.

유전자마저 이기적인 인간은 누구나 이기심이 있습니다. 이기심은 사회문화적으로는 부정의 의미입니다만 생물학적으로는 가치 판단이 없는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오늘 내일할 정도는 아니니 생존의 문제는 차치하고, “이기심은 대체로 소유욕에서 비롯되는데 이걸 어떻게 다루어야 지속가능할까?”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진화생물학 책과 팟캐스트를 들으며 불현듯 깨닫게 됐습니다.

푸른 유리는 빛이 그것을 통과하여 비칠때 푸르게 보입니다. 이는 유리가 다른 빛을 모두 흡수하고 파란색만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유리를 푸르다고 하는 이유는 푸른색 파장을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유한 것이 아니라 내보낸 것에 따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양식을 “소유한 것”에서 “흘려보내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같은 맥락에서 불교의 공사상이나 양자역학의 비국소성/무차별성까지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그럴 재량은 없고, 이것이 한낱 트렌드가 아니라 이미 밝혀진 본질이자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깨달은바, 완전히 이타적이면 이득보며 살게 됩니다. 애매하게 이타적이면 거짓인 거 들통나고요.

2. 의사결정 매뉴얼 정해보기

1)매뉴얼은 원칙, 신념, 철학으로 구분해 보세요.

원칙은 반복된 실행 끝에 ‘이건 절대 깨지지 않아야 한다’고 몸에 새겨진 행동 규칙입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경계선이며, 삶을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최소한의 시스템입니다.

신념은 외부의 정보보다 스스로 세운 기준을 더 신뢰하는 내적 확신입니다. 판단이 흔들릴 때 방향을 다시 정렬해주는 나침반이자, 원칙이 오래 지속될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입니다.

철학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입니다. 원칙과 신념을 통합해 삶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며, 시간과 환경이 달라져도 자신을 일관되게 유지하게 하는 틀입니다.

2)생존→성장→안정기로 나눠 작성해 보세요.

생존기는 원칙, 그중에서도 Do not을 정하세요. 모를때 내지르고 무식해진다고, 하지 말아야 원칙으로 하방선을 쌓으세요.

성장기는 원칙과 철학을 세워서 내가 가는 길의 궤적과 방향을 선명하게 만드세요.

안정기는 그동안 잘 지키고 받아 들인 것들을 갈무리하여 세상을 보는 준거틀을 만들고 좀더 깊이 있는 철학으로 내 존재를 정립해 보세요.

제 매뉴얼을 이에 따라 구분해보면 아래 표와 같아요. 참고하셔요 :)

구분

핵심 문장

분류

이유

생존기

가족에게 돈 빌리지 않는다

원칙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은 행동 규범. ‘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경계선

뭘 안 할지 정해라

원칙

복잡성을 줄이는 판단 루틴. 반복 실천으로 체화된 생존 규칙

성장기

선택지에 답은 없다. 빨리 선택해서 답으로 만든다

원칙

행동이 사고보다 앞서야 한다는 실행 규칙. 격차를 만드는 작동 원리

활을 쏘고 과녁을 그려라

철학

결과보다 과정, 목적보다 창조적 시도를 중시하는 세계관

통제할수록 자유롭다

원칙

삶을 시스템화해 자유를 확보하는 자기 통제의 규율

방향은 가지되 목표는 가지지 않는다

철학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으로 항해하는 존재론적 태도

성장은 어제보다 +1을 만드는 거다

원칙

일상 단위의 개선 규칙. 꾸준함을 성장으로 전환시키는 반복 원리

안정기

사실을 이기는 건 일관성이다

신념

세상에 대한 확신의 형태. 정보보다 패턴을 믿는 내적 기준

중간값이 많을수록 선택지가 많아진다

철학

이분법을 거부하고 균형과 확장을 중시하는 사고 체계

완전히 이타적이면 이기를 채울 수 있다

철학

소유 중심에서 순환 중심으로 이동한 존재론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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