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thropic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ChatGPT를 만든 OpenAI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에요. 2026년 3월 기준 기업가치 380억 달러, 한화로 약 53조 원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그로스 마케팅 팀에 어스틴 라우(Austin Lau)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력이 참 재밌는데요? 10개월 동안, 사실상 혼자서 Anthropic의 퍼포먼스 마케팅을 운영했어요. 유료 검색 광고, 유료 소셜 광고, 이메일, SEO. 전부 1인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AI 회사의 급성장기에, 마케팅 실행을 한 사람이 돌린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은 코드를 한 줄도 짜본 적이 없었습니다. Anthropic이 만든 Claude Code라는 터미널 기반 개발 도구가 출시됐을 때, 라우의 첫 반응은 이랬습니다. "이 제품이 뭐에 쓰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마케터로서는 그냥 와닿지 않았다." 터미널을 여는 법부터 구글에 검색해야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 이 사람은 피그마 플러그인을 만들었습니다. 버튼 한 번으로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최대 100개까지 자동 생성하는 도구인데요? 광고 카피 제작 시간이 2시간에서 15분으로 줄었고, 크리에이티브 변형 작업은 30분에서 30초로 줄었습니다. 전환율은 업계 평균 대비 41% 높았어요.
이 사례를 "AI 덕분에 업무와 코딩이 쉬워졌다"로 읽으면 핵심을 놓칩니다. 오늘 말씀드릴 이야기는 코딩 이야기가 아니에요. 자기 업무를 충분히 깊이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이야기입니다.
라우가 실제로 매일 어떤 업무를 하고 있었는 지 구체적으로 봐야합니다.
먼저 라우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봐야 해요.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혼자 운영한다는 건 이런 겁니다.
Google Ads에서 반응형 검색 광고(RSA)를 돌리려면, 광고 그룹 하나당 헤드라인이 15개, 디스크립션이 4개 필요합니다. 이 카피를 몇 주마다 전부 갈아줘야 해요. 그래야 광고 피로도가 쌓이지 않거든요.
이 카피를 만드는 과정을 열어보면 이래요. 기존 캠페인의 성과 데이터를 읽습니다. 어떤 키워드에 어떤 메시지가 반응이 좋았는지를 파악해요. 그 맥락 위에서 브랜드 톤에 맞는 새 문장 초안을 만들어요. 그런데 Google RSA에는 헤드라인 30자, 디스크립션 90자라는 엄격한 글자 수 제한이 있어요. 한 글자라도 넘으면 업로드가 안 됩니다. 초안을 쓰고, 글자 수를 맞추고, 15개 헤드라인과 4개 디스크립션의 조합을 만들고, 이걸 CSV 파일로 정리해서 Google Ads에 업로드해요.
여기까지가 카피 한 세트입니다.

피그마에서 광고 이미지 만드는 과정을 Claude Plugin을 만들어서 해결한 어스틴 라우
피그마에서 광고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은 더 반복적입니다. 기존 디자인 프레임을 열어요. 복제합니다. 구글 독스로 탭을 바꿔서 새 카피를 복사해요. 다시 피그마로 돌아와서 붙여넣습니다. 이걸 10개 이상의 카피 변형에 대해 반복해요. 그리고 각 변형을 모바일 비율, 태블릿 비율, 데스크톱 비율로 재배치합니다. 프레임 복제, 텍스트 교체, 비율 재배치. 복제, 교체, 재배치. 이 루프를 하루에도 몇 번씩 돌립니다.
라우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그 시간이 정말 빠르게 쌓인다."인데요?
10개월 동안 이 작업을 혼자 반복하면, 두 가지를 알게 돼요. 어디서 시간이 가장 많이 죽는지, 그리고 그 시간 중에서 사람의 판단이 정말 필요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광고를 만든다"를 열면 안에 뭐가 있을까요?
여기서 제가 항상 말하는 업무의 언번들링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자기 업무를 이름으로 부릅니다. "광고를 만든다." "PPT를 만든다." "뉴스레터를 쓴다." "영업을 한다." 이 이름들은 편리하지만 위험해요. 이름이 하나이기 때문에, 일도 하나인 것처럼 보이거든요.
라우가 한 일의 출발점은, "광고를 만든다"라는 하나의 덩어리를 열어서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본 거에요.
열어보니까 크게 두 종류가 있었어요.
첫 번째 종류는 이렇습니다.
"어떤 메시지가 우리 고객에게 먹히는가?" "이 헤드라인이 경쟁사 대비 차별화가 되는가?" "브랜드 톤이 맞는가?". 이 모든건 이건 사람만 할 수 있는 판단이에요. 시장 감각, 고객 이해, 톤 조율.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게 우리 고객한테 와닿는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건 10개월간 그 시장에서 직접 광고를 돌려본 사람의 감이죠.
두 번째 종류는 이렇습니다.
"이 메시지를 헤드라인 30자, 디스크립션 90자에 맞춰라." "15개 헤드라인과 4개 디스크립션을 CSV 컬럼에 정리해라." "이 프레임을 복제해서 카피만 바꾼 버전 10개를 만들어라." 이 모든 건 규칙이 명확하고, 반복적이고, 실수하면 안 되는 작업이에요. 사람이 해도 되지만, 사람이 할 이유가 없는 작업이에요.
그러면 이걸 언번들링을 한 번 해볼까요? 조각 창업 프레임으로 쪼갠 1인 그로스 마케터의 업무 구조는 이렇습니다. 단계별로 나눠보겠습니다.
1단계는 시장 & 데이터 읽기가 필요합니다. 인풋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지요.
모듈화 | 세부 업무 | 실제 작업 내용 | 판단 주체 | 조각 분류 |
|---|---|---|---|---|
1. 시장 & 데이터 읽기 (인풋 시스템) | 캠페인 성과 분석 | 어떤 키워드에 어떤 메시지가 클릭/전환을 만들었는지 데이터를 읽고 패턴을 찾음. "이 헤드라인이 왜 먹혔는가"를 해석하는 일. | [사람] 해석 | Know |
경쟁사 광고 모니터링 | 같은 키워드에 경쟁사가 어떤 메시지를 쓰고 있는지 파악. 차별화 포인트를 찾는 일. | [사람] 판단 | Know | |
키워드 & 오디언스 맥락 이해 | "이 키워드를 검색하는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추론. 구매 의도 vs 정보 탐색 구분. | [사람] 추론 | Know |
2단계는 메시지 설계가 필요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시스템을 만드는 거지요.
모듈화 | 세부 업무 | 실제 작업 내용 | 판단 주체 | 조각 분류 |
|---|---|---|---|---|
2. 메시지 설계 (크리에이티브 시스템) | 가치 제안(Value Prop) 결정 | "Claude가 고객에게 주는 핵심 가치가 뭔가"를 한 문장으로 정의. 캠페인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 | [사람] 전략 | Know |
브랜드 톤 조율 | Anthropic의 브랜드 가이드라인에 맞게 문장의 뉘앙스를 맞춤. 프로덕트 마케팅 & 카피라이팅 팀과 협의. | [사람] 감각 | Do | |
헤드라인 초안 작성 | RSA용 헤드라인 15개, 디스크립션 4개의 메시지 방향을 잡음.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결정. | [사람→기계] 협업 | Do | |
글자 수 규격 맞추기 | 헤드라인 30자, 디스크립션 90자 제한에 맞게 한 글자씩 조정. 넘으면 업로드 거부됨. | [기계] 검수 | . | |
헤드라인 & 디스크립션 조합 생성 | 15개 헤드라인 × 4개 디스크립션의 조합을 만들어 최적 세트를 구성. | [기계] 조합 | . | |
CSV 포맷 정리 & 내보내기 | Google Ads 업로드 규격에 맞게 캠페인 & 광고 그룹 컬럼과 카피를 CSV로 정리. | [기계] 정리 | . |
3단계는 비주얼 크리에이티브를 만듭니다.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거지요.
모듈화 | 세부 업무 | 실제 작업 내용 | 판단 주체 | 조각 분류 |
|---|---|---|---|---|
3. 비주얼 크리에이티브(디자인 시스템) | 크리에이티브 컨셉 결정 | 어떤 비주얼 톤으로 갈 것인가. 이미지, 색감, 레이아웃의 방향성. | [사람] 전략 | Know |
피그마 마스터 프레임 제작 | 최초의 디자인 템플릿 1개를 만듦. 이후 모든 변형의 기준이 되는 원본. | [사람] 제작 | Make | |
카피별 프레임 복제 | 마스터 프레임을 복제하고, 각 변형에 새 카피를 붙여넣음. 10개 이상 반복. | [기계] 복제 | . | |
비율별 재배치 | 같은 크리에이티브를 모바일(9:16), 태블릿(4:3), 데스크톱(16:9) 등 비율별로 재배치. | [기계] 변환 | . | |
CTA & 헤드라인 텍스트 교체 | 프레임 안의 텍스트 레이어를 하나씩 찾아서 새 카피로 교체. 프레임당 수 분 소요. | [기계] 교체 | . | |
최종 크리에이티브 검수 | 오타, 잘림, 정렬 오류, 브랜드 가이드 위반 확인. 사람 눈으로 최종 점검. | [사람] 검수 | Do |
4단계는 실행과 배포를 하기 위한 런칭 시스템을 만드는 거고, 5단계는 측정과 반복 루프를 만드는 피드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모듈화 | 세부 업무 | 실제 작업 내용 | 판단 주체 | 조각 분류 |
|---|---|---|---|---|
4. 실행 & 배포(런칭 시스템) | Google Ads 캠페인 세팅 | 캠페인 구조, 입찰 전략, 타겟팅, 예산 배분을 설정. | [사람] 설계 | Do |
광고 업로드 | 완성된 CSV와 크리에이티브를 Google Ads, Meta Ads 등에 업로드. | [기계] 업로드 | . | |
A/B 테스트 설계 | 어떤 변수를 테스트할 것인가(헤드라인 vs CTA vs 이미지). 실험 구조를 설계. | [사람] 설계 | Know | |
트래킹 픽셀 & UTM 세팅 | 전환 추적 코드와 UTM 파라미터를 정확히 삽입. | [기계] 세팅 | . | |
5. 측정 & 반복 (피드백 시스템) | 성과 데이터 수집 | Google Ads, Meta Ads 등에서 CTR, CPC, 전환율 데이터를 추출. | [기계] 수집 | . |
성과 해석 & 인사이트 도출 | "왜 이 헤드라인이 먹혔는가", "왜 이 오디언스에서 전환이 떨어졌는가"를 분석. | [사람] 해석 | Know | |
다음 실험 가설 수립 |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에는 이걸 바꿔보자"는 가설을 세움. | [사람] 판단 | Solve | |
실험 결과 아카이빙 | 가설, 실험 내용, 결과를 기록하고 축적. 다음 의사결정의 근거로 활용. | [기계] 기록 | . |
그래서, 이렇게 업무를 잘게 쪼개보는 언번들링 요약을 해보면 이렇습니다. 전체 세부 업무는 22개인데요? 이 중 사람이 중심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는 60%가량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별 조각으로 이걸 나눠보면 이렇게 됩니다.

언번들링한 것에서 보여주는 건 라우의 진짜 무기는 Know 조각이라는 건데요? 22개 업무 중 사람이 해야 하는 12개의 대부분이 Know(시장 해석, 전략, 인사이트)에 몰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개월간 혼자 돌리면서 쌓은 "이 시장에서 뭐가 먹히는가"에 대한 체감 지식이 핵심 자산이 되는 거죠.
그리고, 업무의 41%는 처음부터 사람이 할 필요가 없는 작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검수, 프레임 복제, CSV 정리, 비율 재배치. 이런 것들은 규칙이 명확하고 반복적인 작업입니다. "광고를 만든다"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을 뿐, 본질적으로 기계의 일인거죠.
그러면, 자동화 가능한 11개 업무가 곧 만들 수 있는"도구 후보"이자 "프로덕트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라우가 만든 피그마 플러그인은 3번 모듈(비주얼 크리에이티브)의 기계 영역 3개를 한꺼번에 자동화한 것이죠. 그리고, /rsa 워크플로우는 2번 모듈(메시지 설계)의 기계 영역 3개를 자동화한 것입니다. 같은 병목을 겪는 마케터가 수만 명이라면, 이 도구 자체가 프로덕트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건, Know/Do가 깊어야 쪼갤 수 있습니다. 글자 수 맞추기가 반복적이다"를 아는 건, 매주 RSA 카피를 직접 만들어본 사람만 체감할 수 있습니다. 업무를 쪼개려면 먼저 그 업무를 충분히 깊이 해봐야 하고, 이해를 하고 있어야합니다. 이런 쪼개기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참고로 위의 워크플로우는 제가 인터뷰를 보고 판단하여 렉스의 조각창업 방법론으로 재구성 해본 것입니다.)
아무튼 라우가 발견한 건, 자기 업무의 상당 부분이 두 번째 종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거죠.
사실 이건 라우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대부분의 직장인이 "내 일"이라고 부르는 것의 내부를 열어보면, 사람의 판단이 정말 필요한 부분은 전체의 20~30%이고, 나머지는 규칙 기반의 반복 작업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두 종류가 "광고를 만든다"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뒤섞여 있으니까, 전체가 마치 사람이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거죠.
계산기 앱부터 만들어 본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라우가 처음부터 피그마 플러그인을 만든 건 아니에요. 순서가 있었습니다.

동료가 사내 슬랙에 "비기술직을 위한 Claude Code 설치 가이드"를 올렸어요. 라우는 그걸 따라 해봤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만든 건 단순한 계산기 앱이었어요. 덧셈, 뺄셈이 되는 계산기. 라우의 표현을 빌리면, "Claude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려고."했죠.
이게 중요합니다. 이 사람은 "나는 코딩을 모르니까 대단한 걸 만들 수 없다"가 아니라, "이 도구가 뭘 할 수 있는지 일단 확인해보자"로 접근한 거에요. 계산기 앱이 돌아가는 걸 보고, 그 다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잠깐, 이게 되면 다른 것도 되겠는데?"

그 다음 단계가 피그마 플러그인이었어요. 라우는 Claude Code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피그마에서 반복적인 카피 복사-붙여넣기 문제를 겪고 있다. 이걸 해결하는 피그마 플러그인을 만들어줄 수 있나?" Claude가 피그마 API 문서를 스스로 읽고, 제약 조건을 파악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어요. 45분에서 1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 나온 프로토타입은 완벽하지 않았어요. 라우가 피드백을 주고, Claude가 수정하고, 다시 피드백을 주고. 이 과정을 거쳐서 작동하는 플러그인이 완성됐습니다. 이 플러그인으로 프레임을 선택하고, 카피 변형을 한 번에 붙여넣으면, 버튼 한 번으로 최대 100개의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자동 생성돼요.

Google Ads 카피 워크플로우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rsa라는 커스텀 슬래시 명령어를 만들어서, 캠페인 데이터와 기존 카피와 키워드를 입력하면, Anthropic의 브랜드 톤 가이드와 Google Ads RSA 규격을 자동으로 참조해서 카피 초안이 나옵니다. 그리고 CSV 파일로 내보내져요.
단, 라우가 강조하는 게 있어요. "Claude는 좋은 브레인스토밍 파트너지만, 첫 번째 시도에서 항상 맞추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은 Claude와 대화하면서 카피를 다듬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Claude에게 제공하는 모든 카피와 예시는 프로덕트 마케팅 팀과 카피라이팅 팀이 함께 만든 것이다. 사람의 판단이 Claude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녹아 있다."
결국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올린 게 아닙니다. 사람이 판단하고, AI가 실행하고, 사람이 다시 검수하는 구조입니다. 모든 걸 AI에 맡기면 퀄리티는 엄청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이게 가능했던 진짜 이유는 "코딩을 배워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가 나옵니다

라우가 피그마 플러그인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Claude Code가 좋아서? 물론 그것도 있어요. 하지만 같은 도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수백만 명이에요. 라우만 이걸 한 이유는, 10개월간 혼자 퍼포먼스 마케팅을 돌리면서, "어디서 시간이 죽는지"를 뼛속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프레임 복제가 반복적이라는 걸 아는 건, 매일 피그마에서 그걸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죠. 헤드라인 15개의 글자 수를 하나하나 세는 게 시간 낭비라는 걸 느끼는 건, 매주 그걸 해본 사람만 체감하는 거죠. CSV 정리하면서 실수하는 게 스트레스라는 걸 아는 건, 그 실수 때문에 광고 업로드가 거부당해 본 사람만 진짜로 느끼는 겁니다.
AI에게 "이거 만들어줘"라고 말하려면, "이거"가 뭔지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광고 업무가 힘들어요"는 AI에게 줄 수 있는 지시가 아니에요. "매주 15개 헤드라인을 RSA 규격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데, 글자 수 검수와 CSV 정리가 반복적이고 시간을 잡아먹는다". 이 수준까지 분해해야 비로소 도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결국 AI 시대에 가장 값비싼 역량은 코딩이 아니라, 자기 업무를 충분히 깊이 알고 있는 도메인 전문성이에요. 그리고 그 도메인 전문성이 있어야, 업무를 쪼갤 수 있고, 쪼개야 자동화할 수 있고, 자동화해야 시간이 생기고, 시간이 생겨야 진짜 중요한 일. 사람만 할 수 있는 판단들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라우 본인도 정확히 이걸 말해요. "코딩을 알 필요가 없다. 자기 문제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할 줄 알면 된다." 그리고 Anthropic 내부에서 라우를 가장 가까이서 본 동료가 이렇게 말했어요. "호기심과 끝까지 파고드는 고집. 이게 내가 그로스 마케터에게서 찾는 자질이다. 어스틴이 그걸 체현하고 있다."
그런데 "쪼갠다"는 게 정확히 뭔가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깊이 보겠습니다.
"업무를 쪼갠다"는 말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상당히 어려워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업무를 한 번도 분해해 본 적이 없거든요. "나는 마케터다"라는 정체성은 있는데, "내가 매일 하는 일의 구성 요소는 정확히 뭔가?"를 물어보면 답이 안 나와요.

저는 이걸 조각이라고 부릅니다. 사람 안에는 네 종류의 조각이 있어요.
Know. 내가 아는 것. 경험이나 학습으로 쌓인 지식. 라우의 경우,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지식이에요. Google Ads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RSA의 규격은 뭔지, 어떤 메시지가 전환을 만드는지.
Do. 내가 할 수 있는 것.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술. 라우의 경우, 캠페인 세팅, A/B 테스트 설계, 카피라이팅, 피그마에서의 크리에이티브 제작.
Make. 내가 만든 것.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 라우의 경우, 처음에는 이게 없었어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코딩을 못 하니까 도구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Claude Code가 이 병목을 뚫어준 거에요.
Solve. 내가 풀어본 것. 누군가의 문제를 실제로 해결한 경험. 라우의 경우, "1인 퍼포먼스 마케팅 팀이 대규모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는가"라는 문제를 풀었어요.
라우가 도구를 만들 수 있었던 건, Know와 Do가 충분히 깊었기 때문이에요. 10개월간 혼자 돌리면서 쌓인 Know(퍼포먼스 마케팅 지식)와 Do(캠페인 운영 실행력)가, AI 도구를 만났을 때 Make(피그마 플러그인, RSA 워크플로우)로 전환된 겁니다.
그리고, Know와 Do가 얕은 사람은 뭘 만들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광고 업무를 자동화하고 싶어요"는 방향이지, 정의가 아니에요. "매주 15개 헤드라인을 RSA 규격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데, 글자 수 검수가 반복적이다"는 정의에요. 전자는 Know/Do가 얕은 사람의 말이고, 후자는 깊은 사람의 말이에요. AI 도구는 후자만 알아듣습니다.
근데 Know와 Do를 깊게 만들려면, 먼저 뭘 알아야 할까요
여기서 하나 더 들어갑니다.

라우의 동료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어요. "호기심이 생기면 거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답을 찾아야 하는 사람." 터미널이 뭔지도 몰랐는데, "이게 되는지 알아야겠다"는 고집으로 계산기 앱을 만들고, 1주일 만에 피그마 플러그인까지 갔어요.
이건 성격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깊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라우는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업을 깊이 있게 알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전략을 짜고 메시지를 다듬는 건 좋아했을 거에요. 그건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일이니까. 프레임 복제하고 글자 수 세고 CSV 정리하는 건 싫었을 거에요. 그건 기계적 반복이니까.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뭘 자동화해야 하는지를 알았어요.
이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못 하는 거에요. "내 업무가 뭔가요?"라고 물으면 직함을 말하고, "뭐가 힘든가요?"라고 물으면 "다 힘들다"고 답해요. 다 힘든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에요. 자기 업무 안에서 에너지를 주는 부분과 에너지를 빼앗는 부분을 구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쪼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몰입의 방향성을 결(結)이라고 부릅니다. 조각이 "내가 뭘 할 수 있는가"를 정한다면, 결은 "왜 나만이 이걸 하는가"를 정해요. 세 가지가 있어요.
서사결.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10개월 동안 혼자서 AI 회사의 마케팅을 돌린 사람"이라는 서사는, 라우가 아무 말을 안 해도 신뢰를 만들어요. "이 사람은 진짜 해본 사람이다."
관계결. 내가 누구와 엮여 있는지. 라우의 경우, Anthropic이라는 AI 선두 기업의 내부에서 실무를 한 사람이에요. 이 위치에서 나온 인사이트는, 외부에서 AI를 관찰만 하는 사람과는 깊이가 다릅니다.
집착결. 내가 무엇에 미쳐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면 거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답을 찾아야 하는" 사람. 터미널도 모르면서 1주일 만에 플러그인을 만든 건, 이 집착결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같은 Know/Do 조각을 가진 퍼포먼스 마케터는 많아요. 하지만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라우만이 이걸 할 수 있었던 건, 조각의 깊이 + 결의 방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에요.
거시적인 상황을 한번 보겠습니다
개인의 이야기에서 거시적 상황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Engineering Talent Shortage Statistics by Programming Language [2026]
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 부족이 400만 명이에요. IDC의 2025년 추산입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34만 4천 개의 새로운 기술 직종이 열리는데, 채울 사람이 없어요. 기업의 87%가 이미 기술 인력 부족을 겪고 있거나 곧 겪을 거라고 답했습니다.
이 구조적 부족이 만든 현실이 뭐냐면, "엔지니어한테 부탁해야 하는 일"과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 사이에 거대한 백로그 그러니깐, 웨이팅 리스트가 생겼다는 거에요. 마케터가 자동화 도구를 원하면 엔지니어에게 요청합니다. 엔지니어 백로그에 들어가서 2달 뒤에 나옵니다. 그때쯤 업무가 이미 바뀌어 있어요. 이 사이클이 전 세계 모든 비기술직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트너 기준으로 2026년까지 신규 애플리케이션의 70%가 로우코드/노코드 기술로 만들어질 전망이에요. 2020년에는 25% 미만이었습니다.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347억 달러, 한화로 약 48조 원입니다.

[표1] 문제 정의 프로세스 (The Problem-Definition Pricess)
이건 "코딩이 쉬워졌다"는 이야기로 받아드리기에는 너무 납작한 시각입니다.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직접 도구를 만드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로 생각하는 게, 개인한테도 더 유리해요. 그리고 이 시대에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정의하는 능력. 즉, 자기 업무를 쪼개는 눈이에요.
이전에 이 뉴스레터에서 사힐 블룸이라는 크리에이터를 해부한 적 있어요. 이 사람은 "내가 쓰는 비용 항목 자체를 사업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쓰는 디자인 비용을 디자인 에이전시로, 영상 편집 비용을 영상 제작사로 만들었어요. 비용을 매출로 전환한 거에요.
어스틴 라우의 사례에서 같은 구조가 보입니다. 라우가 만든 피그마 플러그인은 자기가 쓰려고 만들었지만, 이 문제를 겪는 퍼포먼스 마케터가 라우 한 명일까요? 수만 명이 매일 같은 복제-교체-재배치를 반복하고 있어요. 블룸이 "비용"에서 사업을 발견했다면, 비기술직 전문가는 "반복 작업"에서 프로덕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Know/Do는 있는데 Make가 없어서 실행을 못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코딩을 못 하니까. Make 조각의 진입 장벽이 높았으니까. 지금 그 장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나는 코딩을 모르니까 이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없어"라는 말이 2026년에는 더 이상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인지?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좋은 이야기인데, 나는 AI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퍼포먼스 마케터도 아니잖아."
맞아요. 라우의 직무를 복제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라우가 한 일의 구조는 복제할 수 있습니다.
그 구조는 이거에요. 자기 업무를 충분히 깊이 알고 → 그 안에서 반복적인 조각을 식별하고 →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과 기계에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하고 → 기계에게 넘길 부분을 도구화한다.
이 구조의 첫 번째 단계가 뭔가요? 자기 업무를 충분히 깊이 아는 것 입니다. 그리고 자기 업무를 깊이 알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해요. 내가 뭘 알고(Know), 뭘 할 수 있고(Do), 뭘 만들어봤고(Make), 누구의 문제를 풀어봤는지(Solve). 그리고 왜 이 일을 하는지(서사결),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관계결), 뭘에 미쳐 있는지(집착결).
이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나는 마케터다", "나는 디자이너다", "나는 영업이다"라는 직함은 있는데, 그 직함 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각이 있는지, 어떤 결이 있는지를 분해해 본 사람은 거의 없어요.
라우가 10개월간 혼자 마케팅을 돌리면서 자기 업무의 병목을 알게 된 것처럼, 당신도 지금 하고 있는 일 안에서 Know/Do/Make/Solve를 분리해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분리를 해봤을 때,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이건 내가 잘하는 건데 아직 사업으로 안 만든 것." 다른 하나는 "이건 내가 매일 반복하는 건데 도구로 만들 수 있는 것."
어느 쪽이든, 쪼개 봐야 보여요.
라우의 인터뷰 마지막 말이 이거였어요. "대부분의 마케터는 AI를 카피 쓰거나 브레인스토밍하는 용도로만 본다. 하지만 자기 워크플로우에 진짜로 Claude를 심어넣을 수 있는 영역이 뭔지를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건 마케터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에요.
당신이 매일 하는 일을 "이름" 대신 "조각"으로 열어본 적 있나요? 그 안에서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과 기계가 해도 되는 부분을 구분해 본 적 있나요?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뭘에 미쳐 있는지를 정직하게 써본 적 있나요?
해본 적 없다면, 그게 첫 번째 할 일이에요. 도구는 그 다음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한번 열어보세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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